“주문량 반토막나 폐업 고민”… 늘어나는 ‘공장 임대’ 현수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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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그늘… 수도권 공단 빈공장 급증

실적악화 못버티고… 인천 남동구 남동대로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한 건물에 공장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남동공단에선 이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공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실적악화 못버티고… 인천 남동구 남동대로 남동국가산업단지 내 한 건물에 공장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남동공단에선 이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공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천=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 모퉁이 지날 때마다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거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멈춘 공장을 볼 수 있었다. 공단 내 한 식품공장 관계자는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하루 7시간 단축 근무를 하고 있는데 경기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서울 바로 옆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가 지금 처한 현실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2015년 6월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한 가운데 ‘제조업 불황’은 지방을 거쳐 수도권으로 북상하고 있다.》


1일 인천 남동구 남동대로의 한 건물에는 ‘현 위치 공장 3층 220평(약 727m²) 임대’라고 적힌 노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남동국가산업단지(남동공단) 곳곳에서 이 같은 현수막이 걸린 공장들을 볼 수 있었다. 인근 N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경기 악화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기존 공장에서 더 작은 곳으로 옮기거나 아예 매각하는 곳들이 꽤 있다. 예년 대비 공장 매물은 늘었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어 거래는 오히려 줄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동남권을 중심으로 한 지방 산업단지에 이어 수도권 산업단지까지 ‘불황의 그늘’이 번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던 서울, 인천 등 수도권 공단에서도 실적 악화에 폐업을 고민하는 공장이 늘면서 공실 증가와 임대료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 공장 매물 나와도 살 사람 없어

이날 만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남동공단 내 공실률이 지난해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P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얼마 전 20년 가까이 700평짜리 금형공장을 운영했던 사장님이 사업을 정리하고 42억 원에 공장을 내놨는데 매수자가 별로 없어 결국 40억8000만 원에 계약했다. 제 가격에 매물이 나와도 계약할 땐 10%가량 낮추는 게 요즘 추세”라고 했다. 그는 월 임대료 330만 원이던 소형 공장(110평)도 최근 300만 원에 거래됐다고 전했다.

아파트형 공장(지식산업센터)이 많은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도 비슷했다. 구로구 구로3동 공단부동산의 이춘선 대표는 “작년 말에는 매물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건물마다 1개 이상 있다. 실적이 나빠지면서 사업을 접으려는 회사가 늘었다”고 말했다. 금천구 가산동 우림라이온스밸리는 3개동 670개 공장 중 10개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인근 H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 지난 10년간 입주 대기자가 줄을 선 곳이었는데 지난해부터 공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맞은편 가산비즈니스센터는 공실이 늘면서 매매가도 내렸다.

공단 경기가 악화되면서 인근 상권도 타격을 받고 있다. 남동공단 인근 한 상가 2층의 찹쌀순대 체인점은 평일 낮에도 폐업한 것처럼 테이블을 한쪽으로 밀어놓은 채 문이 잠겨 있었다. 근처 해장국집도 점심시간이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다. 식당 주인은 “공장들이 어려우니 식당 손님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인근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일대 식당 권리금은 7000만∼8000만 원에서 최근 2000만∼3000만 원까지 내렸다.

가산동 일대 상가들도 공실이 늘었다. 한 상가 지하 1층의 고깃집 관계자는 “요즘은 회식이 줄어든 데다 인건비도 올라 장사 못 하겠다는 사장들이 많다. 오래 장사한 분들은 체감 경기가 이만큼 나쁜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기서 7년째 영업하던 식당 주인이 가게를 내놓았다. ‘힘들어서 장사를 더 못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 순이익 ‘제로’ 기업도 증가


공장을 운영하는 영세업체들은 경기 악화에 따른 매출 감소, 최저임금과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로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했다. 남동공단 내 식품공장의 생산담당부장 박모 씨(52)는 “올 들어 거래처의 주문이 점점 줄더니 요즘은 작년의 절반밖에 안 된다. 워낙 일이 없어 회사 운영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근 비닐 제조공장 관계자도 “지난해 초 비용을 줄이려고 공단 내 공장 두 곳을 하나로 합쳤다. 경기가 안 좋아서 공장 설비를 60%밖에 안 돌린다. 거래처인 2, 3차 가공업체 150곳 중 올해만 5, 6곳이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월 75로 지난해 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전달 대비 하락폭(5포인트)은 2015년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가장 컸다.

순이익이 쪼그라든 업체도 늘고 있다. 6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0원 이하’로 신고한 법인 수는 전년 대비 9.8%로 늘어난 26만4564개였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2년 이후 최고치다. 1년간 회사를 경영했지만 순이익이 전혀 없거나 오히려 손해를 본 기업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순이익이 1000만 원을 넘지 않는 법인도 8만5468개였다. 전체 법인세 신고 법인(69만5445개) 중 순이익이 없거나 1000만 원 이하인 곳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인천=이윤태 인턴기자 연세대 사학과 4학년
#공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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