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前 “댓글로 지켜줘야”…“거대 네트워크 있다” 과시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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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 댓글 여론조작 파문]폐쇄됐던 드루킹 블로그 다시 공개

“두 눈을 부릅뜨고 한 달 동안 그를 지켜줘야 합니다. (중략) 적극적으로 의사를 피력하고 댓글을 달고 전화를 하면서 그를 지켜줘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가 2017년 4월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일부다. 대선을 불과 한 달가량 앞둔 시점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로 확정된 다음 날이다. 김 씨는 “우리가 손을 놓고 있었다면 정말 위태로운 경선이 됐을 것”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막지 않았다면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뒤 “남은 한 달 ‘이명박근혜’ 잔당이 문재인에 맞설 것이다. 여론조사를 조작하고 불리한 기사만 쏟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 폐쇄된 블로그 다시 ‘공개’ 전환

이 글은 김 씨의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에 있는 게시물 200여 건 중 하나다. 김 씨의 블로그는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이 알려진 다음 날인 14일 폐쇄됐다가 16일 오후 늦게 다시 공개됐다. 일부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였다. 뒤이어 김 씨의 또 다른 블로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도 폐쇄상태에서 17일 오후 8시경 공개로 바뀌었다. 김 씨가 주변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다른 운영자가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증폭되는 시점에 민감한 내용이 담긴 블로그를 굳이 공개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김 씨는 지난해 대선 직후 쓴 글에서 “당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이 정권도 실패한다”며 지지자 결집을 촉구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를 언급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안 지사만 깐다. 저는 이거를 일부러 이미지를 하락시키는 장기적 전술이라고 본다”고 썼다. 다른 세력의 여론전 가능성을 주장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이런 작업이 내 눈에는 띈다.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라는 거대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블로그 ‘경인선’에는 2016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꾸준히 글이 올라왔다. 대선 기간이던 4월 말에는 한 언론사의 기사를 인용해 “안랩 직원들이 안철수 후보의 선거운동에 동원돼 왔다”는 글을 썼다. 선거 뒤에는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등 현 정부를 응원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 고서·경선 동원해 ‘아전인수’식 해석

고서와 경전을 이용해 정치나 사회 문제를 해석한 글도 많았다. 특히 ‘송하비결의 재해석’ ‘우주방정식 자미두수(紫微斗數)’ 같은 글이 눈에 띄었다. 송하비결이란 조선 말기에 쓰였다는 일종의 ‘예언서’다. 자미두수는 중국의 도교에서 시작한 점술이다.

2017년 1월 김 씨는 “송하비결에 나온 구절”이라며 ‘해룡기두(海龍起豆)’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 사진과 고향인 거제도 지도를 첨부한 뒤 “바다에서 태어난 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훌륭하냐는 뜻”이라고 썼다. 2014년 7월에는 세월호 참사가 예견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예언했다”(2016년) “일본 대지진이 오고 통일한국이 온다”(2017년)는 내용도 있다.

경공모 회원도 우주와 은하, 태양, 지구(열린 지구와 숨은 지구로 구분), 달, 노비라는 단계로 구분됐다. 50대 전 회원 A 씨는 “우주에 관심이 많아 이런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안다. ‘노비’는 자조적 표현인데 ‘우리는 아파트 한 채에 목숨을 거는 금융제도의 노비’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를 활동의 본거지로 삼은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보인다. 느릅나무 출판사가 입주한 건물 관계자는 “김 씨와 회원들은 ‘교하(交河·지금의 파주시 교하읍)천도론’을 자주 운운했다. 파주를 찍은 항공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하천도론은 1600년대 조선 광해군 때 수도를 교하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던 데서 비롯됐다. 복도와 벽면에는 ‘교하’를 중심으로 한 가로 길이 2m의 대동여지도가 걸려 있다.

전 경공모 회원들은 김 씨의 행각을 “사이비 교주 같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 “소액주주 운동을 하자며 주식 10만 원어치를 사서 양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짜(사기꾼)’ 냄새가 났다”는 글을 올린 전 회원도 있다.

권기범 kaki@donga.com / 파주=김은지 / 조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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