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평양의 미인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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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북한의 원로 가수들이 총출동해 진행된 공연 ‘추억의 노래’에서 열창하는 북한 인민배우 가수 최삼숙. 유튜브 캡처
2015년 봄 북한의 원로 가수들이 총출동해 진행된 공연 ‘추억의 노래’에서 열창하는 북한 인민배우 가수 최삼숙. 유튜브 캡처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북한 미인은 어디에 다 가 있죠?”

최근 몇 달 동안 탈북 예술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묻게 된 계기를 설명하려면 작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실 그때 중국의 북한 식당 여종업원 12명이 한국에 왔다는 통일부의 깜짝 발표에 난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 속에 ‘북한 가요계의 여왕’ 최삼숙의 외동딸이 포함됐다는 소식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남쪽 사람들에겐 이 전설적 가수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듯싶다.

최삼숙은 북한 예술의 전성기였던 1970,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다. 가수 남인수(본명 최창수)의 조카이기도 한 그는 북한이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내세우는 ‘꽃 파는 처녀’(1972년) 주제곡을 포함해 수백 편의 영화, 드라마 주제곡을 불렀다. 북한이 제작한 영화가 아무리 많아도 연간 수십 편에 그쳤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대를 주름잡은 것이다. 31세 때 예술인의 최고 명예인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고 40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며 부른 독창곡은 2800곡이 넘는다. 아마 북에 한국 같은 노래방이 있다면 노래 목록 책자는 최삼숙이란 이름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니 최삼숙은 한마디로 “여러분이 한국 최고 가수로 누구를 꼽든, 북에서 그의 인지도는 그것 이상이다”쯤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가수의 외동딸이 탈북했다니….

최삼숙이 딸을 돌려보내라며 만든 서류에 적은 주소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리동 64반?”

주체사상탑 뒤편 이 동네는 평양 중산층 거주지에도 속할까 말까 한 곳이다. 북한 최고의 여가수가 인기 없는 동네의 허름한 작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정을 좀 알 만한 탈북자를 만나면 “왜 최삼숙이 신리동에 사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더 놀라웠다. 돈 없는 가수가 거기 사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것이다. 한 탈북 예술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경훈 알죠? 2000년대 초반 이경훈이 하도 초라한 행색으로 양동이를 들고 물 길으러 다니길래, 외화벌이 회사 다니는 지인이 돈을 좀 쥐여주었더니 덥석 받고 눈물 글썽이며 고맙다고 인사하더래요.”

‘남자 최삼숙’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훈이 몇 푼의 동정에 울먹였다니. 비록 출신성분이 나빠 인민배우 아래인 공훈배우에 머물렀지만 그만큼 많은 노래를 부른 남성 가수도 드물다.

탈북 예술인들은 말했다.

“예술인이 가진 게 뭐가 있어요. 권력이 있나, 달러 만질 수 있나, 장사할 수 있나. 예술인끼리 눈 맞아 살면 배급에 목매달고 사는 거지가 되기 십상이죠.”

남쪽에서는 선전선동에 강한 북한에선 예술인이 큰 대우를 받는 줄 안다. 하지만 실상은 권력자의 눈에 든 일부 아이돌만 특혜를 받는다고 했다.

사정을 듣고 보니 온 나라가 다 아는 최고의 가수 어머니가 끼니 걱정하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를 최삼숙 딸의 심정이 이해됐다. 중국에 와서 바깥세상에선 스타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똑똑히 봤을 것이다.

“그래, 나 같아도 열 받지. 가수는 그렇다 치고 영화, 드라마 배우는 좀 낫지 않나요. 제가 북에서 살 땐 동네에서 예쁜 여자애들을 보면 ‘배우감이다’ 이랬는데.”

“에이, 뭘 만들어야 출연하든지 말든지 하죠.”

하긴 요즘 북에서 새 영화, 드라마가 거의 안 나오긴 한다. 아버지와 달리 김정은은 핵미사일에 미쳤지 영화엔 별 관심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뭘 찍어도 몰래 본 할리우드 영화, 한국 드라마에 눈 높아진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욕설을 퍼부으니 예술인들이 만들 의욕도 없어졌어요.”

6년 전 있었던 일이라 한다. 김정일이 한국 드라마가 부러웠던지 “우리도 역사물 드라마 제대로 한번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단다. 그래서 최고 배우들이 총출동해 찍은 것이 23부작 ‘계월향’이었다. 하지만 TV로 10부까지 방영했을 때 참고 참던 김정일이 “재미없다”고 화를 내며 “때려치우라”고 했단다. 드라마가 도중에 방영이 갑자기 중단됐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북한이니 가능한 일이다.

나도 유튜브로 계월향을 봤다. 여주인공은 낯선 신인이었다. 이후엔 사라진 것 같아 궁금해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 걔는 집에 돈 좀 있어 여주인공 됐죠. 요새 영화나 드라마나 주인공이 되려면 의상은 모두 자기 돈으로 해결해야 해요. 소속사나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집에 돈이 없음 배우 못 해요. 잘사는 집은 딸 한 번 띄워서 시집 잘 보내려고 해요.”

영화계나 가요계가 저 지경이면 도대체 북한의 미인과 가수 소질을 타고난 인재는 다 어디에 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디겠어요. 달러가 도는 곳에 가 있죠. 예쁘면 외화를 쓰는 식당이나 상점의 접대원, 봉사원이 최고죠. 돈 있는 남자와 만나 결혼할 확률도 높고요.”

아하. 북한의 미인을 만나려면 평양의 외화식당과 외화상점에 가야 하는 것이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미인#최삼숙#최삼숙 외동딸#이경훈#탈북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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