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진현]이 땅이 아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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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AI·구제역으로 땅에 묻힌 7600만여 가축들… 재선충에 4600만 소나무 제거 한두 세대 뒤 어떤 영향 미칠까
세계 최다 음식쓰레기 배출국… 먹거리 자립 역발상 필요하고 우리 흙 공기 물 살릴 수 있는 새 씀씀이의 새 틀 절실하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객원논설위원·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이 땅이 아프구나. 이 땅속이 신음하는구나.

‘8월 장마철’ 용평 갔다 들른 월정사 초입까지의 길은 온통 파헤쳐지고 구멍 뚫리고 헤집어지고 있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은 긴 장마에 상처 나고 옆다리들은 군데군데 부서졌다. 평창 올림픽으로 평창과 대한민국이 얼마나 편하고 잘살게 될지. 1986년 2월 5일자 동아일보에 ‘올림픽 국운(國運)’이란 칼럼을 쓰고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협박받고 오라 가라 시달렸던 추억이 새롭다. “국운을 거는 진군의 나팔소리에 가려 있는 올림픽 논의의 불모성이랄까 허구성이랄까는 언제나 벗어나려는지”라고 썼다. 개막식과 폐막식에 두 번 쓰고 없애기 위해 1163억 원을 퍼붓고 기업에 준조세 요구가 여전하다니 31년 전의 회의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땅에는 인공적으로 살상된 생명들이 너무 많이 묻혀 있다. 너무 빠른 속도로. 8월 첫 주만 해도 무더위에 폐사한 닭이 117만 마리, 작년부터 올봄까지 이어진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도살처분된 닭과 오리 3300만 마리, 2014년 AI로 처분된 가금류 1400만 마리와 2014년 이전까지의 누적 도살처분 2500만 마리, 2011년 구제역으로 도살된 소·돼지 354만 마리, 전부 합치면 7600만 마리가 땅속에 묻혀 있다. 이제 ‘친환경 살충제 달걀’ 포함 4200만 개의 달걀 폐기까지. 1977년 닭 사육 총수가 3032만 마리이고 1978년 소·돼지 총수가 347만 마리인 것을 기억하면 2011년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도살처분량이 얼마나 살벌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 나라 국목(國木)이라 할 소나무가 1989년부터 재선충에 시달려 1200만 본의 고사목이 방제됐다. 89년부터라지만 2014년부터 방제처분된 것이 620만 본이니까 지난 4년간의 발생량이 29년 전체의 반 이상이다. 지난 1년간 발생한 재선충 고사목 99만 본을 방제하고 감염 우려목, 매개충 서식처가 될 수 있는 일반 고사목 등 287만 본도 제거했다. 재선충으로 처분된 소나무 고사목의 3배가량 주변 나무가 제거되는 것을 보면 지난 29년간 방제목은 4600만여 본이나 된다.

1973년부터 폐기된 독성살충제 DDT가 이번 달걀 검사 과정에서 나왔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묻힌 저 많은 도살처분, 방충처분된 생명들이 한두 세대 뒤 이 땅에 어떤 침출수와 병원균을 살포할 것인지. 이제 이 땅의 생명들, 특히 에너지와 먹거리의 생명자원을 소비하는 우리 모두는 극단의 한계, 생존의 궁극에 이르렀음을 고백하자. 이 땅, 이 사람, 이 정치, 이 정부, 이 국회, 이 대학, 이 문화, 이 나라가 막다른 골목에 왔음을 자각하자. 그리하여 새 개벽을 궁리하고 숙의하자.

방사형 양계를 하면 지금의 케이지보다 50배의 땅이 필요하고 달걀 생산은 10분의 1로 준다고 한다. 이 땅의 밀집도와 경제성은 공장제 밀집이건, 자연방사건 가축 사육이 원천적으로 맞지 않는다. 땅이 넓고 가장 위생적이라는 세계 2위 농축산물 수출국 네덜란드도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고 규칙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독일 돼지고기로 만든 햄과 베이컨도 간염 유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식쓰레기 배출 국가이며 세계적으로도 음식의 3분의 1이 쓰레기가 되는 역리(逆理)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이 땅과 이 지구의 조건에 충실한 먹거리 자립의 역발상을 다듬자.

이 나라 자강으로의 패러다임 시프트, 그것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역대 정권에 누적된 총체적 실패, 즉 국폐(國弊)의 청산(한 정권 차원의 보복적 또는 진영 논리적 청산이 아니라)을 시작하자. 특히 2011년 이후 심상치 않게 이 땅에 묻히고 있는 저 급증하는 동식물의 인공살상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올림픽을 핑계로, 그리고 풍요와 복지란 이름으로 이 땅을 아프게 하지 말자. 이 땅의 흙과 공기와 물과, 그리고 자연농법과 초근대 과학기술을 통합하는 새 생각, 새 사람, 새 정치, 새 씀씀이의 새 틀을 만들자.

진실로 더 이상의 인공살상을 막으려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살신의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만난 박정희 대통령의 충신 중 최고인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영애 박근혜에게 아버님 영정에 큰절하고 자결하라고 공개적으로 절규했다. 진보로 알려진 한 정치학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긴 미래 성공을 위해 현재적 순교를 요구했다. 이 정도의 살신봉사라야 더 이상의 인공살상을 막고 이 땅의 아픔을 다스리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

김진현 객원논설위원·세계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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