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어가길’ 순종 동상 철거공방 가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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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순종 순행은 치욕적 사건”
일부 시민단체, 동상철거 촉구
중구 “정체성 돌아보는 계기” 반박

대구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공원 앞에 있는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대구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공원 앞에 있는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대구 중구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건립한 순종 동상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역사를 왜곡하는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구는 “아픈 역사를 통해 민족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며 반박한다.

중구는 5월 달성공원 입구에 높이 3m의 순종 동상을 세웠다. 중요한 국가 의식 때 입은 대례복(大禮服) 차림으로 끊어진 아치형 다리에 서 있는 모습이다.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에게 다리가 돼주고 싶어 했을 순종의 마음을 추정해 형상화했다.

순종 동상은 중구가 2013년부터 추진한 어가(御駕)길(달성공원∼북성로 약 1km) 복원사업의 하나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 광문사(廣文社) 옛터(현 수창초교 후문)에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민족교육을 위해 세운 우현서루(友弦書樓)가 있던 대구은행 북성로지점 외벽에 대형 역사 전시물을 설치하는 등 선조들의 자주독립 염원과 민족의식을 알리는 사업도 포함됐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등은 29일 순종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9년 1월 7일 순종의 전국 순행(巡行·임금이 나라를 두루 살피며 돌아다님)은 일제가 백성의 저항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는 이듬해 8월 29일(경술국치일)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공포했다. 대구지부 관계자는 “순종의 순행은 경술국치를 예고한 치욕적 사건”이라며 “동상은 역사적 사실을 미화하고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중구는 2011년 도시학교에서 주민들과 협의해 추진한 도시재생의 한 요소라는 견해다. 낡은 북성로 일대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민족의 독립 염원과 역사적 가치를 담아 조성했다는 것이다. 순종이 중심이 아니라 다크투어(dark tour·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여행)를 주제로 교육적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순종 복장을 순행 당시의 군복이 아닌 대례복을 입은 모습으로 설정한 것도 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고 정체성을 성찰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치욕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의미가 있는 만큼 역사 왜곡보다는 재해석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동상의 안내문에 일제의 강압에 의한 굴욕적 행렬이었지만 백성들이 환영했고, 항일 의지에 대한 암시적 독려의 뜻이 담겼으며, 순종이 강제병합 공포에 서명 날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았다.

순행 당시 순종이 달성토성 신사를 참배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 신사가 순행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당시 순종은 달성군 사립학교 연합운동회에 참석하기 위해 달성토성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중구 관계자는 “일제강점기의 아프고 침울한 과거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며 “역사 왜곡이 아닌 몰랐던 사실을 바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어가길#철거#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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