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범죄 경력이 훈장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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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누구나 시청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전과자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은 시대다. 마약류 복용 전과가 있는 연예인이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자신의 과오를 코믹하게 그려내는 일이 전파를 탄다. 거액의 도박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코미디언 역시 도박과 연관된 대사가 나올 때면 별로 부끄럽지 않은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내용으로 받아 넘긴다.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낸 정도는 신호위반 범칙금 정도로 여기는지 아무렇지 않게 온갖 방송을 휘젓고 다니는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재미와 관심을 끌게 만들어 당사자에겐 돈을 벌어주는 또 다른 ‘훈장’이 되고 말았다.

국회의원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4급 보좌관이 월급에서 매달 150만 원을 반납해 지역구 사무실 운영 경비로 충당했다고 한다. 다른 보좌진도 자진해서 월급 50%를 반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국회의원이 중요 경선에 출마하자 핵심 측근은 건설업자로부터 “경비가 많이 들 텐데 사사로운 경비는 이 카드로 사용하시라”는 말과 함께 법인카드를 받았다. 국회의원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유명 부티크에서 한 번에 구입한 옷값 500만 원이 이 카드로 결제됐다. 이 매장의 옷값은 보통 벌당 100만 원이라고 알려졌다.


고위직에 오른 이 국회의원은 공관에서 만찬을 베풀었다. 지역구에서 대형 사업을 벌이려는 건설업체 대표 2명을 불러 군소 건설업자에게 공사를 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나온 이유다. 핵심 측근이 이 군소 업자가 공사를 딸 수 있게 모 대학 관계자를 연결시켜 줬단 의심도 있었다. 3선 국회의원과 장관 두 번,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명숙 씨 이야기다. 그는 정치자금으로 달러를 포함해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년 수감되고 최근 출소했다. 금액이 커서 그런지 보좌진의 월급꺾기나 공사 따주기 압력 의혹은 별 주목도 끌지 못했다.

계좌에 출처 불명의 2억4100만 원이 입금됐다거나 정치자금이라고 받은 돈 중 1억 원짜리 수표가 동생의 전세자금에 쓰였다거나 환전 기록이 없는 한 씨 두 동생이 미국 유학 중인 한 씨 아들에게 1만 달러 넘게 송금했다는 의혹도 판결문에 기록돼 있다.

이런 의혹 역시 수수 금액에 비하면 사소해서 그랬는지 그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간 느낌이다. 그런데 그는 출소 첫 일성으로 “새 세상을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자신의 뒤에 여러 국회의원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환하게 웃는 그를 보니 “내 세상을 만났다”고 말하는 듯했다.

전과자가 사회에 복귀하려면 죗값을 다 치르고 피해를 갚는 등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다. 그런 사람이라야 사회 구성원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생계 수단을 잃었을 법한데 정치판이나 방송판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큰 죄를 저지르고도 점점 더 당당해지고 있다. 이를 보는 언론이나 대중도 익숙해져 그런지 비판의 목소리가 별로 없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하려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이 정도 잘못이면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퇴출시켜야 업계에 깨끗한 신인 한 명이라도 더 나타나지 않겠나.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고인 한명숙은 그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 비추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쓰고 징역형과 함께 추징금 8억8000여만 원을 선고했다. 한 씨는 아직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새 세상’이 열린 덕분인가, ‘내 세상’이라 여기는 오만함 때문인가.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범죄#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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