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무원 임금 놔두고 私기업 월급 공개한다는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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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경제정책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이익과 관련해 김 장관은 11일 인사청문회에서 민간기업의 임금을 공개하는 ‘임금분포 공시제’ 도입을 공언한 바 있다. 이 제도는 개별 기업이 직급과 직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의 임금 수준과 격차를 정부에 보고하면 정부가 이를 임금 분포도로 만들어 공표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임금분포 공시제는 노조의 임금 협상력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다. 기업이 공개하지 않았던 임금 정보를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공시하면 다른 기업들도 임금 인상 압박을 느끼게 되고,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시도한 적이 없는 정책을 우리나라가 최초로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올해 독일에서 ‘공정임금법’이 공포됐으나 동일 또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위해 2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가 신청할 경우에만 관련 정보를 고지하는 수준이다. 노르웨이 벨기에 등도 당사자의 요구가 있을 때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미국도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긴다. 대선 공약대로 전체 기업을 상대로 임금 정보 공개를 강제할 경우 노사 갈등은 물론이고 기업이 임금에 따라 서열화하고, 강성 노조를 둔 기업의 임금만 유독 상승해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용 형태와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가 과도하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부당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과 사회적 대타협은 필요하지만 민간기업의 임금을 일일이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다. 공무원 증원을 앞둔 정부가 공무원의 직종 직급 호봉별 세부 수당과 연금액을 비공개로 감춰 두고 사기업만 압박하는 것은 일의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문재인#김영주#공무원 임금#임금분포 공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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