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 美·北 ‘말싸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3가지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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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자 북한은 10일 미국령 괌에 대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그야말로 일촉즉발로 갈 듯한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BBC 방송 중문판은 이런 기세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10일 ‘미국과 북한이 죽어라 싸우면 누가 이길지 말하기 어렵다’는 사설에서 “미국이 비록 힘이 세지만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며 “북한과 죽어라 싸우는 지경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체면을 깎는 것은 아니다”고 충고했다. 북한이 미사일 4발을 괌에서 30~40km 떨어진 해상에 쏠 수도 있다고 경고해 미국이 발끈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BBC 중문판이 북미 간에 전쟁으로 비화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제시한 3가지 중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누구도 싸울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보유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권의 생존이다. 그런데 미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정권은 위기를 맞는다. 북한이 미국 혹은 한국 등 동맹국을 공격하는 경우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하고 김정은 정권은 역설적으로 생존할 수 없게 된다. 김정은은 핵을 보유하면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이 어려워져 리비아의 카다피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미국에 당하지 않을 것을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선제적 공격을 할 것인가. 미국은 북한이 공격을 당하면 한국이나 일본에 보복을 가하고 심지어 미 본토가 공격을 당하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BBC는 전한다.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은 북한 정권의 전복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붕괴돼 미국과 한국 군대가 압록강까지 올라오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전쟁이 발생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중국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둘째는 비록 설전은 더욱 거칠어지지만 무력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미국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말은 미국 대통령이 통상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BBC는 전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막스 피셔도 “국제관계에서 최고지도자가 즉흥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일관된) 정책상의 신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7월 북한의 두 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 후 중국과 러시아 지지까지 얻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도 바라고 있다는 미 외교관의 말도 있다고 BBC는 전한다.

BBC는 세 번째로 북미 간 ‘전쟁 위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필립 크롤리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1994년 북한이 국제사회의 핵사찰을 거부할 때에도 미국과 북한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이 있었지만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 일본 한국을 공격하겠다고 줄곧 목소리를 높이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한 것도 여러 차례라는 것이다.

BBC는 마지막으로 전쟁이 발생하면 한국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당하는데도 한국이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낙관론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환추시보의 10일 사설은 북미 간에 높아지는 긴장 분위기에 비하면 한 발 떨어져 훈수하는 듯한 분위기다. 또한 북미 긴장 사태를 보는 중국의 시각을 잘 반영해 주는 것이어서 뜯어볼 만하다.

신문은 “북미가 말싸움을 벌여봤자 미국이 이득을 보지 못한다”고 충고했다. 북미 간 현 국면을 ‘말싸움’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미국이 북한을 말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이유로는 ‘미국이 뭐라고 하건 북한 사회에는 (전달되지 않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미국 여론은 귀를 쫑긋 세우고 양측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있으며 미국 증시는 크게 내려가지만 북한은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신문은 “힘이 약한 북한은 보다 강경한 발언으로 힘의 부족을 메운다”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북한이 비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가졌더라도 먼저 미국을 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입으로 위협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다만 올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을 통해 ICBM 기술에 큰 돌파구를 마련해 미국을 위협하는 실제적인 능력을 뒷받침하게 된 것이 변화라고 봤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이 북한의 위협을 들을 때 느낌이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고도 했다.

신문은 “북한 미사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국이 제재와 군사위협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됐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위해 각종 대가를 치르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저평가했다. 그리고 북한 사회가 각종 어려움도 참아낼 것이라는 것을 저평가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중국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오히려 신문은 “제재와 군사위협을 무한히 높이는 것은 마른 수건을 더 짜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을 짜내려는 것과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신문이 “지금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이 뭐라고 경고하거나 어떤 군사적 위협을 하거나 안보리 제재가 어떤 수준에 도달해도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보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안보 우려에 대해 진지하게 응답해야 할 시점으로 중국이 제기한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개발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쌍궤 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상)이 한반도 상황을 완화할 유일한 출구”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중국에는 ‘맨발인 사람은 신발 신은 사람 겁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더 잃은 것이 없는 사람이 겁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미국이 비록 힘이 세지만 북미 양측이 죽어라하고 싸우면 북한이 꼭 진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신문은 충고한다.

“미국은 북한과 목숨 걸고 싸우는 상황까지 가지 않는 것이 체면을 손상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를 고언으로 들을 수도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는 데 함께 나서기는커녕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고나 오히려 북한 편을 든다고 생각하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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