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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이 그의 유일한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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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이 그의 유일한 언어였다

김지영기자 입력 2017-06-27 03:00수정 2017-06-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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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사진작가 케르테츠展
프랑스어도 영어도 못했지만 흑과 백의 사진언어로 각국서 활동
시대를 앞서간 예술성 뒤늦게 각광
“사진만이 나의 유일한 언어이다.”

할 줄 아는 언어는 모국어가 전부였던 헝가리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사진)가 말한 이 문장에는 그의 생애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프랑스어를 몰랐지만 카메라를 들고 서른한 살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그는 파리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역시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채로 미국 뉴욕으로 간 그는 미국 주류 사진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다 삶의 후반기에 이르러 세계적인 조명을 받게 된다.

‘앙드레 케르테츠’전이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케르테츠의 사진 189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대부분 흑백사진이지만 21세기 사진예술의 시선으로도 뒤지지 않는 구도와 감각을 자랑한다.

‘수영하는 사람’(1917년). 수영하는 사람의 몸이 물과 빛의 반사작용에 의해 왜곡된 형태를 띤다.
가령 ‘수영하는 사람’(1917년)이 그렇다. 꼭 100년 전의 이 사진은 수영장에서 몸을 길게 뻗고 수영하는 사람을 찍은 것이다. 지금도 새로운 부분은 대상의 ‘달라 보임’이다. 물속에 있기에 몸은 실제보다 길어 보이고, 물에 잠겨 있어 얼핏 목이 없는 듯하다. 실제와는 다른 ‘왜곡된’ 모습이지만 피사체가 품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햇볕으로 인해 생긴 흰 빛줄기들은 짙은 색의 수영장 바닥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가 파리 시절 작업하는 ‘왜곡’ 시리즈의 모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케르테츠는 생애 내내 연출 없이 마음에 드는 구도가 나올 때까지 관찰하다가 순간을 포착했는데, ‘수영하는 사람’은 오랜 기다림 끝에 한순간 누른 셔터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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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케르테츠가 미국에 왔을 때 사진잡지 ‘라이프’의 편집장은 그의 작품을 지면에 싣기를 거절했다. 그의 이미지들이 “너무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많은 것을 함축한 케르테츠의 사진은 앞서 ‘파리 시기’(1925∼1936년)에 예술성을 발했다. 당시 사진작가들은 어두운 밤을 찍지 않았지만 케르테츠는 밤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가 찍은 밤거리 풍경에서 검은 밤하늘과 가로등 조명 아래 건물은 놀랍도록 선명한 흑백의 조화를 이룬다.

‘포크’(1928년). 포크와 그 그림자의 흑백 대조가 선명하다. 앙드레 케르테츠는 대상의 부속물로 여겨졌던 그림자를 부각시키고 거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성곡미술관 제공
이 흑과 백의 동거가 두드러지는 것은 케르테츠의 일련의 그림자 사진들이다. ‘포크’나 ‘샹젤리제’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포크의 그림자, 나란히 놓인 의자들의 검은 그림자다. 케르테츠는 실제 의자는 화면에서 잘라내면서 그림자를 오롯이 살린다. 사물에 기생해 있던 그림자들은 케르테츠의 작품에서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된다.

기록사진과 상업사진을 중시하는 미국의 풍토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예술성을 놓지 않았다. 이런 케르테츠의 작업이 뒤늦게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196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됐다.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우리가 해온 것들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라며 케르테츠에게 존경을 보냈다. 9월 3일까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앙드레 케르테츠#앙드레 케르테츠전#경희궁길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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