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글로벌 포퓰리즘 바람, 우리는 안전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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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대한민국호’의 새 선장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53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주 마음 졸이며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지켜본 국민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젠 대선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무능하고 소통 불능의 지도자에게 심하게 덴 나머지 이번만큼은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 있다.

한국의 대선 날짜가 발표된 15일 유럽의 네덜란드에선 총선이 치러졌다. 인구 1700만 명의 ‘소국’이고, 다당제 국가라 평소 같으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다는 28개 정당이 후보를 냈다. 단독 집권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통 석 달씩 걸리는 지루한 연립정부 구성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새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그 스케일과 무게감이 역대 선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네덜란드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6월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과 다섯 달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던 극우 포퓰리즘 물결이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4, 5월 프랑스 대선과 9월 독일 총선도 포퓰리즘의 위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밀리면 EU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유럽 통합의 꿈도 뒷걸음치게 될 것이다. 프랑스 결선투표(5월 7일) 이틀 뒤 치러지는 한국 대선도 포퓰리즘의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포퓰리즘은 주어진 토양보다는 탁월한 선동가에 의해 그 위력이 커진다. 브렉시트 투표 땐 반(反)이민·반(反)EU 성향의 나이절 패라지 영국 독립당 전 대표가, 미 대선에선 ‘미국 우선주의’와 막말로 무장한 트럼프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원래 유럽에서 포용적인 국가에 속했다. 다문화와 다원주의를 존중해 이민자 배척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마리화나 흡연과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였다. 경제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해 2.1%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5년래 최저치다.

이런 네덜란드 토양에 극우 포퓰리즘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다. 그는 트럼프처럼 트위터 정치로 지지층에 반이민·반이슬람·반EU·반세계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국경 봉쇄, 모스크 폐쇄, EU 탈퇴 국민투표 실시 같은 공약은 극우 성향이 물씬 풍긴다. 또한 연금 수령 개시 연령 65세로 인하, 건강보험료 감액, 노인수당 증액 공약에선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과 1당 자리를 놓고 다툰 빌더르스의 자유당(16일 나온 출구조사 결과는 2위)은 채 20%도 되지 않은 지지율에도 네덜란드와 유럽 각국의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극우 포퓰리즘의 인기에 놀란 나머지 유력 주자들이 득표를 위해 이민자와 난민 문제에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네덜란드 집권당이 총선 직전 반이민 목소리를 냈고, 100만 난민을 포용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부적격 난민의 신속 추방을 발표했다.

빌더르스의 선거 슬로건은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 것으로’다. 무슬림 이민자들을 몰아내고 평화로웠던 예전의 네덜란드로 되돌리겠다는 빌더르스의 약속은 이민자·난민 증가로 피해를 봤거나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갈수록 악화되는 빈부 격차와 치솟는 청년실업률 등으로 쌓여 가는 우리 사회의 불만을 방치한다면 한국판 빌더르스의 등장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글로벌 포퓰리즘#대통령 선거#미국 우선주의#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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