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얼어붙었는데… 세금 10조 더 걷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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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탁금지법-AI 영향 외식업 한파


10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H 한식당의 저녁 예약표에는 빈 곳이 눈에 띄게 많았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이 한식당의 저녁 손님은 확 줄었다. 2만9000원짜리 메뉴를 시켜도 술을 곁들이면 청탁금지법의 식사 상한액인 3만 원이 훌쩍 넘는다. 식당 직원은 “법 시행 전보다 30∼40% 매출이 떨어진 적도 있다. 물가가 올라 2만9000원 메뉴의 단가를 맞추기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외식 경기가 얼어붙었다. 경기 침체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계란 가격 급등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외식업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특히 치킨전문점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지난해 10∼12월 평균 외식업 매출액은 74.27, 고객 수는 74.29에 그쳤다. 매출액과 고객 수가 25%가량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업종별로 출장음식 서비스업이 64.69로 매출 감소가 가장 컸고, 주점업(67.89) 일반음식점(72.51) 등도 타격이 컸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기업 행사가 줄어들면서 출장 뷔페 같은 출장음식업 수요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4분기(10∼12월)의 외식산업 현재경기지수도 65.04로 3분기(7∼9월·67.51)보다 하락했다. 현재경기지수는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체감경기지수로 100을 밑돌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업종별로는 특히 구내식당업(74.23→69.46), 치킨전문점(66.00→60.26), 제과업(69.29→64.90), 분식 및 김밥 전문점(68.53→62.76)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침체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외식업체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음식점까지 경기의 영향을 혹독하게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도 외식업 전반의 경기 침체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출장음식 서비스업과 치킨전문점의 경우 향후 3∼6개월간의 성장 및 위축 정도를 나타내는 미래경기지수가 각각 59.51, 58.54로 크게 낮았다. 한 치킨업체 관계자는 “마케팅에 강한 대형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치킨 점포가 장사가 안 돼 힘들다고 난리다. 치킨도 시켜 먹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 작년 국세 24조 늘어 증가폭 최대


지난해 정부 세수가 전년 대비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 원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예상한 것보다 9조8000억 원이 더 걷혔다. 부실한 세수 예측으로 정부 곳간만 호황을 누리며 경기 부양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10일 내놓은 ‘2016년 세입·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242조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217조9000억 원)보다 24조7000억 원이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가 연간 재정에서 쓰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도 8조 원에 달해 2년 연속 흑자를 냈다.

체감 경기는 얼어붙었지만 세금이 더 걷힌 것은 부동산 경기 호조로 거래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이 결과 양도소득세가 정부 예상보다 2조6000억 원 더 걷혔다. 김병철 기재부 조세분석과장은 “2016년 부동산 거래가 전년보다 줄 것으로 봤는데, 지난해 7월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래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많이 올라 양도세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민간 소비가 늘고 수출 부진으로 환급액이 줄면서 부가가치세도 정부 예상보다 2조1000억 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보다 5.9% 감소하며 수출 기업에 돌려줘야 하는 부가세 환급액이 줄어든 것이다. 근로소득세도 기업들의 상여금과 임금이 늘고 고소득자 비율이 증가하면서 1조8000억 원이 더 걷혔다.

문제는 정부가 불과 5개월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9월 정부가 국세 세입예산안에서 전망한 2016년 국세 수입은 223조1000억 원이었다. 실제 거둬들인 것과 비교하면 19조5000억 원이 차이가 난다. 지난해 7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때 다시 올려 잡았지만 이마저도 9조8000억 원 차이가 났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경기가 좋을 때는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서 경기를 ‘다운’시키고 안 좋을 때는 적게 거둬들여서 경기를 ‘업’시키는 게 자연스러운 경기 부양 효과인데 지금은 정부가 경기에 역행하는 행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부정확한 세수 예측까지 더해져 정부의 경기 대응 능력은 더욱 떨어진다.

2년 연속 흑자를 낸 정부는 경기 위축을 막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에 나설 방침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재정정책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실물경제에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수 kimhs@donga.com·김재영 기자·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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