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행, 불가능한 지시… AI 이어 구제역도 초기대응 실패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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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7년만에 사상최악 위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번 주에 구제역 백신 접종을 마치라”는 불가능한 지시를 내린 것은 탄핵 정국에 따른 국정 공백이 심각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사상 초유의 가축 질병 ‘멀티 바이러스’ 대란이 닥쳤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된 보고조차 이뤄지지 않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황 권한대행은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일 대선 주자급 행보를 보이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본업인 대통령 권한대행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컨트롤타워 공백이 빚어지는 사이 현장에서는 다양한 가축 질병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 위에선 엉뚱한 지시, 아래선 보고 누락

황 권한대행은 9일 오전 8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제역 방역과 관련해 “구제역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초동 대응이 중요한 시점인 만큼 긴박감을 갖고 방역에 총력 대응해야 한다”면서 백신 접종을 서둘러 마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의 지시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전 9시 20분 브리핑을 갖고 “경기 연천군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새로운 유형인 A형으로 확인됐다”며 “백신을 새로 수입하려면 일주일 정도 필요하고, 그때까지는 O형 위주로 접종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사실을 9일 오전 1시에 파악하고, 영국 측에 O+A형 백신 물량 확보를 긴급 요청했다. 하지만 9일 아침까지 황 권한대행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인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이 참석한 관계장관회의에서 “백신 접종을 서둘러 마쳐라”란 엉뚱한 메시지가 그대로 나갔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회의 이전에 관련 보고를 받지 못해 모든 소에게 접종하기로 한 초동 대응 조치를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정부가 엉터리 수준의 백신 접종 통계로 방역대책을 세운 사실도 드러났지만 9일 회의에선 이에 대해 보완 지시는커녕 질책도 없었다.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지면서 관료사회의 긴장감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전국에 퍼진 멀티 바이러스

9일 확진 판정을 받은 연천의 젖소 농장이 A형 구제역으로 확인되고 충북 보은군에서 추가로 구제역 양성 농가가 발견되자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올렸다. 구제역 때문에 심각 단계가 발령된 것은 2010년 구제역 파동 이래 처음이다.

심각 경보가 발령되면서 전국의 가축시장이 18일까지 일시 폐쇄되고 살아있는 가축이 농장 간에 이동하는 것도 금지된다. 연천 구제역 발생에 따라 경기도 내 가축은 15일 밤 12시까지 7일간 다른 시도로 나갈 수 없다.

이날 보은에서는 첫 확진 농가에서 1.3km 떨어진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추가로 접수돼 양성으로 판정됐다. 정부는 첫 확진 젖소 농가에서 3km 이내 농가들의 항체형성률을 급히 조사해 8일 발표했지만 이 농가는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도는 “인력이 부족해 젖소 농가만 조사하고 한우 농가는 조사를 못 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현재 소에게서만 발견된 구제역이 돼지에게까지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서상희 충남대 교수(수의학)는 “기온이 내려가면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 특성상 따뜻한 곳에서 기르는 돼지보다 밖에서 기르는 소에게서 먼저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돼지에서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 구제역 파동 당시 돼지가 집중적으로 감염돼 최악의 피해를 냈다. 당시 돼지 336만 마리가 도살 처분돼 총 2조8695억 원의 피해를 냈다. 돼지는 정부가 발표하는 항체형성률도 소(97.5%)보다 낮은 75.7% 정도다. 실제 항체형성률은 이보다 낮은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 번 감염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예상된다.

주춤했던 AI마저 두 개 바이러스가 동시 발견돼 다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H5N6과 H5N8이 동시에 대유행을 일으키면 변이가 일어날 우려가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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