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든지’와 ‘-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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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죽든 살든 상관없소.” 북한 형사 임철령(현빈)이 남한으로 숨어든 조직의 리더를 잡으려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이를 말리는 남한 형사(유해진)에게 내뱉은 말이다. 남북한 형사의 수사 공조를 다룬 영화 ‘공조’의 한 장면이다.

한데 대사 속의 ‘죽든 살든’을 ‘죽던 살던’으로 잘못 쓰는 이가 꽤 많다. ‘-든’과 ‘-던’의 글자 형태와 발음이 엇비슷해 헷갈린 탓이겠지만 둘의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든지’와 ‘-던지’, -든가’와 -던가’도 마찬가지다.

‘-든’은 ‘-든지’의 준말로, 어느 것을 선택해도 차이가 없는 둘 이상을 나열할 때 쓴다. ‘사과든지 배든지 다 좋다’처럼. 그런가 하면 나열된 것 중에서 어느 것이든 선택될 수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처럼 말이다. ‘-든가’는 ‘-든지’와 의미나 쓰임새가 같다.

이와 달리 ‘-던’은 누군가에게 과거에 경험했거나 알게 된 사실을 회상하여 답하도록 묻는 말이다. ‘그는 잘 있던?’처럼 쓸 수 있는데 ‘-더냐’보다 친근한 느낌을 준다.

‘-던가’와 ‘-던지’는 과거의 일 또는 지나간 일을 회상할 때 쓴다. “너 말이야. 걔가 그렇게 좋던가?”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재밌던지 배꼽을 쥐었다”처럼 쓰면 된다.

또 하나. ‘-든지’와 ‘-던지’ 못잖게 ‘되’와 ‘돼’를 구별해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안 되죠’와 ‘안 돼죠’ 중 어느 것이 옳은지 헷갈려하는 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쉽게 구별하는 방법? 준말 ‘돼’를 ‘되어’로 바꾸어 보자. ‘되어’로 바꿔 말이 되면 ‘돼’를 쓰고, 그렇지 않다면 ‘되’로 쓰면 된다. ‘안 돼죠’의 ‘돼’를 ‘되어’로 바꾸니 ‘안 되어죠’라는 희한한 말이 되고 만다. 따라서 ‘안 되죠’가 바른 표현이다.

문제는 “요즘 장사가 잘돼?”처럼 ‘돼’가 문장 끝에 올 때다. ‘잘돼’는 ‘잘되어’의 준말이다. ‘언제 밥 먹어?’에서 어미 ‘-어’를 떼어내고 ‘언제 밥 먹?’으로 쓰지 않는 것처럼 어미 ‘-어’를 떼어내고 ‘잘되?’로 쓸 수는 없다.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라(되어라)’처럼 ‘되, 돼’를 모두 쓰는 경우도 있다. 이때 ‘되라’는 신문 사설 등에서 흔히 보는 문어체(文語體) 명령이고, ‘되어라’는 듣는 이에게 하는 직접 명령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공조#-든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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