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명절 차례의 종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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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1990년대 초반 설날 아침 할아버지의 좁은 집에는 자식들 3남 3녀 부부와 손자손녀까지 20여 명이 북적댔다. 당연히 마루에는 엉덩이를 붙이고 편히 앉을 공간이 모자랐다. 조금 거짓말을 보태자면 2박 3일 내내 서서 전 부치고 먹으면서 보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 집은 ‘1차 명절혁명’을 맞았다. 큰며느리인 어머니는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祭需)의 가짓수를 줄였고, 손아래 동서들이 빨리 친정에 가도록 점심만 먹고는 헤어졌다.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었을 터다. ‘2차 명절혁명’은 인터넷이 일상화한 2000년대에 시작됐다. 익명의 공간에서 남녀가 편을 갈라 “누가 명절 때 더 힘들었는데…”라며 하릴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러면서 명절을 지내는 과거의 방식은 악습이고 고쳐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됐다.

 1970년대 출생자가 주축인 이른바 X세대가 중년이 되면서 ‘명절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물질적 풍요를 맛보고 개인주의가 뭔지 알며 해외여행을 과거 어떤 세대보다 많이 해서일까. 명절을 휴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늘어났다. 몇 해 전부터는 지방의 본가에 잠깐 들러 차례만 지낸 뒤 연휴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D턴’이란 말이 생겨났다. 부모들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묘는 하지 않더라도 자녀와 함께 해외여행 가는 것을 반기는 집도 많다고 한다.

 설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나 제사는 이미 멸종으로 가는 문턱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개신교 가정은 아예 지내지 않거나 가족끼리 ‘추모예배’로 대신하기도 한다. “유세차…” 하며 축문을 읽는 어른들 뒤에서 “진짜로 영혼이 와서 밥을 먹고 가느냐”고 묻는 아이들 입을 막느라 애먹었다는 며느리도 봤다.

 1인 가구의 증가 역시 차례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서울 거주 1인 가구는 2015년 약 98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7%다. 비혼(非婚)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면서 30, 40대 1인 가구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여성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은 지금 65세 이상 여성 1인 가구 비중도 높다. 서울연구원은 2035년에는 서울에서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일 것으로 전망했다. 혼자 산다고 부모형제 안 찾을까 싶지만 찾을 가족마저 점점 없어진다.

 장묘(葬墓) 방식도 변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가 늘다보니 죽은 후에 반려동물과 함께 묻히거나 화장하는 방식이 각광을 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묘지를 돌봐줄 후손이 없다면 최대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저승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아질 수도 있다.

 20여 명이 어깨를 부딪쳐가며 차례를 지내던 20여 년 전과는 달리 올해는 우리 부모와 작은아버지 부부 가족만 모였다. 어쩌면 우리는 차례의 마지막 목격자일지 모른다. 미래의 명절은 어떨지 궁금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시원섭섭한 것은 나 역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명절혁명#차례#1인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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