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육상스타’ 여호수아, 봅슬레이 전향 결심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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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걸어서 3분 거리 학교를 놔두고 차타고 40분이 넘게 걸리는 학교로 아들을 전학 보냈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다 오후 9시가 넘어야 돌아오는 아들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달리기를 잘했던 아들을 위해 직접 교육청에 전화해 육상으로 유명한 학교를 수소문했다. 육상부 입단 테스트에서 아들은 또래 친구는 물론 형들보다 빨리 뛰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삐쩍 말랐던 초등학교 4학년 여호수아(30)와 그의 아버지였다.

●한국에 28년 만에 아시아경기 200m 메달을 가져온 육상스타

단거리 육상의 꿈나무로 주목받았던 여호수아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8년간 변변한 메달 하나 없었다. "또래 애들에 비해 성장이 늦었어요. 부상도 달고 살았고요. 단거리선수인데도 워낙 말라서 대회 나가면 중장거리선수로 오해받았어요. 타이즈도 맞는 게 없었을 정도였죠."

몸을 불리고 싶어 저녁을 잔뜩 먹은 뒤 오후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결국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뒤늦게 체격이 커지기 시작한 여호수아는 대학시절에도 성장이 멈추지 않았고 키가 182cm까지 커지면서 전국 무대를 잇달아 제패하며 국내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그의 인생 최대 황금기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였다. 사실 당시 여호수아는 메달후보도 아니었다. 그는 2010년 광저우아시아경기 때 부상을 당한 뒤 전성기 기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자신보다 기록이 월등히 앞선 일본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세 번째로 200m 결승선을 통과했다. 중동 국가에 귀화한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에게 1,2위를 내주긴 했지만 아시아 최고 선수로 인정을 받았다.

기적 같은 일은 계속됐다. 400m 계주 결선에서 아쉽게 실격된 뒤 30분 만에 여호수아는 다시 1600m 계주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결승선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다이빙까지 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필사적인 피니시 덕분에 한국의 메달색은 동에서 은으로 바뀌었다. 20년 만에 아시아경기 육상에서 메달 2개를 딴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서른, 20년 열애한 육상과 이별하고 새로 도전하는 봅슬레이

하지만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15년 2월 여호수아는 무릎 추벽 제거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 처음 받은 수술이었다. 빨리 복귀하고픈 마음에 기초 재활에 소홀했더니 제대로 걷지 조차 못할 정도로 통증이 악화됐다. 그해 9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 복귀를 노렸지만 양쪽 무릎 근력의 밸런스가 맞지 않다보니 이번엔 햄스트링에 무리가 왔다. 재활로만 두 시즌을 그냥 날려버렸다.

트랙 인생에 중대 위기를 맞은 그에게 봅슬레이 대표팀 이용 감독이 연락을 해왔다. 봅슬레이로 전향할 생각이 없겠냐고. 이 감독은 힘과 스타트가 좋았던 여호수아를 오랫동안 주시했다고 말했다. "예전에 육상 팀이 태릉에서 훈련할 때 봅슬레이 팀에서 우스갯소리로 '여름에는 풀어줄 테니 겨울에만 와서 봅슬레이 푸시맨 좀 해라' 말하셨던 기억은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라고 했었죠."

결정은 쉽지 않았다. "육상을 딱 20년 했거든요. 인생의 3분의 2를 쏟았잖아요.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육상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은 못 따도 파이널리스트까지는 도전해보고 싶었거든요. 장재근 선생님의 200m 한국기록(20초41)도 아직 못 깼고…."

육상 선수로서의 커리어, 높은 연봉, 못 다 이룬 목표를 모두 포기하고 봅슬레이 전향을 결심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올림픽 메달의 꿈이었다. "운동선수를 하면서 늘 품었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언제부터인가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봅슬레이 이 감독님이 다시 일깨워주셨어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가능하다고. 올림픽 메달, 그거 하나만 보고 가는 거예요."

●2017년, 격변의 여호수아

20년 경력의 베테랑 육상선수는 2017년 새해 봅슬레이 트랙에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2016년의 마지막 날, 인천 송도에서 그를 만났다. 전향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받은 미션은 74kg였던 체중을 102kg까지 불리는 일이다. 무거운 봅슬레이를 끌기 위해서는 체중을 바탕으로 힘을 늘려야하기 때문이다. 또 체중이 많이 나가면 속도를 늘리는데도 유리하다. "지금 81kg정도까지 찌웠는데 평소 입던 옷이 맞지 않기 시작했어요. 운동화는 신을 수 있겠죠? 발에도 살이 찔까요?"

새 도전을 함께할 봅슬레이에도, 새 도전을 응원하는 육상에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정말 모든 선수가 오랜 시간 준비하는 게 올림픽 무대잖아요. 어떤 선수가 올림픽 1년 남기고 영입제안을 받겠어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절 데려가신 만큼 봅슬레이 팀에 누가 안 되게 잘 해야죠. 또 육상 팀에서도 서운하실 법 한데 '올림픽 가서 꼭 금메달 따오라'면서 도전정신을 좋게 생각해주시더라고요."

육상 선수를 하는 동안 대구 세계선수권, 인천아시아경기 등 큰 국제대회를 안방에서 치르는 복을 누렸던 그는 이제 봅슬레이선수로 평창올림픽까지 그 행운을 이어가게 됐다. 2015년 12월 결혼한 그의 아내는 아직 한번도 남편의 경기를 직접 보지 못했다. 육상선수와 결혼했던 아내는 봅슬레이 선수 남편의 경기를 내년 평창에서 처음으로 직접 응원할 예정이다. 새해를 맞은 여호수아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욱 가볍기만 하다.

인천=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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