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중국 시진핑의 ‘조공국’으로 살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8일 2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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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韓中이 적개심 갖고 싸워” 시진핑 연설에서 ‘임란 1592’ 나와
역사는 반복된다고?
명나라처럼 중국이 도울 것 같나, 일본이 또 침략할 것 같은가
大國崛起 위한 경제는 없다… 가치 공유하는 일본 바로 보아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추석 연휴 KBS가 연거푸 내보낸 다큐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탄탄한 고증과 영화 뺨치는 해전, 이순신 장군의 감동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편한 건 2년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에서 “임진왜란 때 양국 백성들과 군인들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웠다”고 연설한 결과가 바로 이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중국중앙(CC)TV의 제안으로 공동 제작했으니 당연히 “명나라를 먹겠다” “전쟁은 기회다” 외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나쁜 인간으로 묘사됐다. 이번 주 등장하는 명나라 군과의 연합작전은 분명 감동의 도가니일 것이다. 시진핑의 음수사원(飮水思源·근원을 생각하고 그에 감사하라) 언급대로 이런 역사를 잊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거나 한미동맹도 모자라 한미일 3각 공조를 해선 안 된다는 시청 소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연찮게도 ‘임진왜란 1592’가 처음 방영된 9월 3일은 중국의 전승절이었다. “결혼을 원한다면 시(진핑) 아저씨 같은 사람하고 하세요. 시 아저씨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영웅,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전진하네”라는 시진핑 찬양가요의 영상 배경도 작년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이 열병식 하는 장면이다. 다행히 톈안먼 성루에서 지켜보는 49개국 지도자들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이 덜컥했다. 혹시 우리 대통령이 보일까 싶어서.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진핑 찬양가요에 시진핑의 말씀학습 같은 개인숭배가 나오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지난달 공산당 전·현직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진핑이 ‘10년 집권’의 불문율을 깨고 장기집권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AFP통신 보도가 의미심장하다. 올 3월 중국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대회) 중 ‘충성스러운 공산당원들’이 ‘시진핑 동지’에게 퇴진을 요구해 파문을 일으킨 공개서한도 이 점을 지적했다. 시진핑이 집단지도 체제를 무력화하고 모든 권력을 틀어쥐면서 정치 경제 사상 등 온갖 방면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이다.

특히 “외교적 측면에서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중국에 호의적인 국제환경을 해쳤을 뿐 아니라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도록 허용해 중국 안보에 위협을 끼치고,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오고,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가 중국을 견제하게 만들었다”는 대목은 눈이 번쩍 뜨인다. 중국에도 양식 있고,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요구하는 공산당원들이 살아있다는 얘기다.

공개서한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정부가 운영하는 인터넷매체 우제(無界)신문에 실렸다가 바로 삭제됐지만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유명 언론인의 실종설이 나오고 ‘부패 고위직’ 체포와 반란설이 끊이지 않는 등 파장이 계속되는 것도 시진핑과 중국이 밖에 비치는 것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이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구가했던 대국굴기(大國崛起)는 일단 멈췄다는 진단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은 영광이 계속될 줄 알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국수주의적 외교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위협했지만 지금 같은 ‘뻥튀기 성장률’과 부패로는 집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말로는 시장중심 개혁을 외치면서 시진핑 중심으로 돌아가는 독재가 성공한다면 세상 이치에 대한 배신이다. 이제는 종주국이 눈을 부라리면 당장 조공무역이 끊겨 굶어죽는 줄 아는 우리 일각의 친중(親中)경사부터 바로잡을 때가 됐다.

‘임진왜란 1592’의 극본을 쓰고 연출한 김한솔 PD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임란 때 김성일(1538∼1593)이 의병 모집의 목표로 중화문화 수호를 강조한 건 왜 안다뤘는지 모르겠다. 16세기에 일본이 침략했고 중국이 도와줬으니 21세기도 그럴 것으로 믿는 것이야말로 바보짓이다. 그때 한국과 중국이 중화(中華)의 가치를 공유했다면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쪽은 중국 아닌 일본이다. 인구 8000만 명의 통일된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환영할 나라도 중국 아닌 일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의 실패를 극복하는 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국민정서법’에 사로잡혀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는 수구꼴통이나 입만 살아있는 ‘입 진보’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며 조공국처럼 살게 놔둘 순 없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임진왜란 1592#중국#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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