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속살]외교관 출신 최고 권력자의 빛과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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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하임, 오스트리아 대통령 당선 뒤 국제무대선 ‘외톨이’
피어슨, 국제 정세 읽고 캐나다軍 베트남 파병 끝까지 반대

외교관 출신으로 선거를 통해 국가수반급 위치에 오른 인물은 유엔 사무총장 출신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왼쪽 사진)과 캐나다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 등을 손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 동아일보DB
외교관 출신으로 선거를 통해 국가수반급 위치에 오른 인물은 유엔 사무총장 출신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왼쪽 사진)과 캐나다 총리였던 레스터 피어슨 등을 손꼽을 정도로 흔치 않다. 동아일보DB
외교관이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정치와 외교는 ‘말’로 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기 때문일까. 외교관 출신 정치인으로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대표적 인물은 쿠르트 발트하임 전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레스터 피어슨 전 캐나다 총리가 꼽힌다.

발트하임 전 대통령은 제4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 사무총장 재임 당시인 1979년 5월 북한 평양과 서울을 잇달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박정희 대통령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인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을 지낸 정통 외교관이었지만 일찌감치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1971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한 차례 패배한 뒤 이듬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그리고 1986년 다시 대권에 도전해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으로서 발트하임의 업적은 초라했다. 대선 기간에 오스트리아 시사주간지 ‘프로필’이 대통령 후보인 발트하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로 복무했고, 유대인 학살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나치 경력을 문제 삼아 외면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지만 대통령이 된 뒤엔 국제무대에서 ‘외톨이’였고 국내적으로도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발트하임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며 대선 후보로 떠오른 데다 북한을 깜짝 방문했던 사실 등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반 총장이 동아일보와 채널A의 올해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지지도 1위(23.3%)를 차지하는 등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세계 분쟁과 갈등을 중재한 외교적 능력을 국민이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기본적으로 협상가인 외교관으로서 평생을 지내온 반 총장이 출마 결심을 굳힌다고 해도 끈질긴 권력 의지를 갖고 대선 가도의 험난한 장애물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국민에게 감동의 리더십과 친화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점에서 피어슨 전 캐나다 총리는 드문 성공사례로 주목된다. 그는 캐나다의 국가 정체성을 세운 외교관 출신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피어슨을 총리로 만든 것은 외교적 위기였다. 1962년 옛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세우려고 하면서 미소 간에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미국과 우방국들은 핵탄두를 캐나다에 배치하려고 했고 보수당은 이를 반대했다. 피어슨은 이때 의회에서 “핵탄두 배치”를 설득하며 집권당과 각을 세웠다. 이듬해인 1963년 총선에서 국민은 피어슨이 이끄는 자유당을 선택했고 피어슨은 총리에 올랐다.

그는 베트남 파병을 요청하던 린든 존슨 미 행정부와도 대립했다. 196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존슨 당시 대통령을 만나기 전날 미국의 통킹 만 폭격을 비판하는 강연을 했다. 이에 격분한 존슨 대통령은 피어슨 총리를 만난 뒤 1시간이나 멱살을 잡기도 했으나 끝내 그는 베트남 파병을 반대했다. 외교관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정세의 맥을 짚고, 전략적으로 판단해 미국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용기를 내비치면서 캐나다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후에 토론토 국제공항이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뀔 정도로 캐나다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쿠르트 발트하임#레스터 피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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