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뒤 캄캄… 경쟁력 키우기보다 정부 입맛 맞추기 경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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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제도 이대로 좋은가]<上>우려 커지는 ‘시한부 사업권’

이번에 롯데면세점이 특허권을 잃게 된 월드타워점. 기존 면세점 사업자라도 5년마다 심사를 통해 특허권을 뺏길 수도 있는 현행 관세법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번에 롯데면세점이 특허권을 잃게 된 월드타워점. 기존 면세점 사업자라도 5년마다 심사를 통해 특허권을 뺏길 수도 있는 현행 관세법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의 면세점 제도는 이대로 좋은가.

14일 발표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 결과가 나온 후 국내 면세점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번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이 탈락하면서 이들 업체의 직원 고용 문제 등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찰권을 따낸 업체들 입장에서도 5년 후 이번과 똑같은 과정으로 정부의 재허가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업의 영속성과 투자 측면에서 여러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내부에서도 ‘제도를 손보자’는 목소리

올 들어 두 차례 면세점 심사를 진행한 관세청은 면세점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논란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면세점 사업의 경쟁력을 높여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취지로 나선 면세점 심사가 ‘대기업의 무한 혈투’로 번지면서 논란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집행 기관으로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히 심사를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면서도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진행한 기존 면세점 심사는 현 정부의 철학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새정치민주연합 주도로 국회가 만든 개정 관세법에 따라 이뤄졌다.

관세법 개정이 논의됐던 2012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별다른 토론이나 논의 없이 이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홍종학 새정치연합(당시 민주통합당) 의원이 “만기가 돌아오는 모든 면세점에 규정을 적용해 신규 업체가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개정법 취지에 대해 설명하자 새누리당은 별다른 견해를 내놓지 않았다. 홍 의원이 재차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압박하자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지금 당장 결정하기보다는 한번 설명하고 나서 그때 결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이후 별다른 논의나 문제 제기 없이 그대로 기재위,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조차 수십 년간 수천 억 원을 투자해 오늘날의 면세점 사업을 이뤄 놓은 업체의 면허를 하루아침에 뺏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면세점 허가 규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주파수나 방송 채널은 자원 자체가 한정돼 있으니 엄격한 심사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지만, 면세점은 정부가 그런 규제를 둬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 등의 수요가 많은 만큼, 단기적으로는 면세점 허가를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업자에게 면허를 주는 ‘등록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면세점 심사한다면서 상생을 심사?

현행 면세점 심사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번 심사는 5개 항목에서 1000점 만점으로 심사를 했다. 항목별로는 관리 역량(300점), 지속 가능성·재무 건전성 등 경영 능력(25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 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노력 정도(150점)를 평가했다.

문제는 ‘면세점 출사표’를 낸 유통 대기업들이 경영 능력 등에서 다른 회사들과 큰 차이가 없자 앞다퉈 사회공헌과 상생 공약을 내놓게 된 것이다. 롯데면세점이 5년간 사회 공헌에 1500억 원을 쓰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데 이어 두산은 면세점 영업이익 10%의 사회 환원, 신세계는 5년간 2300억 원, SK네트웍스는 사회 공헌 기금 2400억 원을 각각 제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시장 및 국내 기업 질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회공헌을 잘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방안을 얼마나 잘 내는지를 ‘좋은 면세 기업’의 평가 기준으로 보는 것 같다”며 “정치 논리와 여론에 휘둘려 면세점을 선정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금융IT학)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어떻게 갖추느냐를 고민해야 하는데, 정작 업(業)의 본질이 아닌 것들을 심사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면세 사업은 내수 산업이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0년 4조5000억 원이던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올해 10조 원 규모로 5년 만에 2배가량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관광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재걸 한국관광협회중앙회 기획협력국장은 “면세 사업은 외국 업체와 경쟁해 외국인을 유치해야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가 자꾸 제동을 거는 것 같아 한국 면세 산업의 전체 경쟁력이 낮아지는 것 아닌지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어 “상생을 해야 한다면 기존 업체의 영업을 멈추게 하는 것보다 지금 장사가 잘되지 않는 지역의 중소 중견 업체들을 대기업이 강제로라도 밀어 주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면세점 점포 수를 한정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며 “자격 요건을 갖춘 기업에 한해 인가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 롯데 “신규 면세점 입찰땐 월드타워점 재도전” ▼

신세계 “내년 4월 개점… 기존 협력사원들 수용”


서울 시내 면세점 후속 사업자 선정에서 월드타워점 수성에 실패한 롯데면세점은 월드타워점 회생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는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에서 열린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마친 직후 “향후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월드타워점으로 재도전하겠다”고 밝혔다. 12월 특허 기간이 만료되는 월드타워점은 최장 6개월까지 연장 영업을 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폐점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시내 신규 면세사업자 심사가 추가로 이뤄질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서울이 아닌 지방에 1, 2개의 면세점을 추가로 허가하는 방안을 추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저도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30만 명 이상 급증한 지역만 신규 특허가 가능하다는 면세점 설치 규제를 완화한 뒤에야 가능하다. 현행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서울과 제주에만 면세점 신규 특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된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을 월드타워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코엑스점이 2017년 특허권 재심사를 앞두고 있는 만큼 무리하게 장소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전 후 만약 코엑스점 사업권마저 빼앗길 경우 수백억 원의 이전 비용까지 손해로 떠안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동요하는 내부 구성원 다독이기에 나섰다. 16일 열린 내부 회의에서 신 회장은 “그동안 국내 1위 면세점을 키운 임직원들은 긍지를 가져도 좋다”며 “임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다른 분야와 해외 사업 등에서 더 좋은 실적을 내고, 롯데호텔 상장 등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며 “롯데면세점 직원들의 고용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라”고 지시했다.

한편 탈락 업체들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사이 신규 면세점 허가를 받은 신세계는 개점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세계디에프는 이르면 내년 4월을 목표로 개점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3000여 명의 예상 신규 인력 수요 가운데 기존 면세점의 협력사원들을 최대한 수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면세점 운영으로 ‘사업보국’과 ‘청년 채용’의 역할을 확대해 국가경제와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겠다”고 밝혔다.

김범석 bsism@donga.com·이상훈 기자
최고야 best@donga.com / 세종=손영일 기자
#면세점#면세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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