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조연으로 살아가고있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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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데 대부분은 조연을 하고 있어요.… 초여름의 나무는 나무마다 잎의 빛깔이 다릅니다. 떡잎 하나, 나뭇잎 하나가 모두 꽃인 초여름 나무처럼 사람도 각자 자기 빛깔을 지녀야 사회가 건전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법정, 최인호·여백·2015년) 》

며칠 전 한 주말 예능 프로그램은 ‘바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평소 상식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연예인들을 모아 소위 박학다식한 연예인들과 대결을 펼치도록 했다. 처음에는 “경쟁이 되겠냐”며 모두가 웃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바보 편에 선 연예인들의 압승으로 끝났다. 말 그대로 ‘바보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일반 상식 문제에서 대등하게 경쟁했고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는 연승을 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한 연예인은 “처음에는 바보들을 모아 얼마나 웃긴지 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리도 잘하는 분야가 하나씩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예능으로 시작했으나 ‘어느 누구를 바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인 물음으로 끝나버렸다.

비슷한 메시지는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도 얘기한 바 있다. 12년 전 서울 성북구 선잠로 길상사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을 담은 책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에서 두 사람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채 태어났지만 좋은 학교를 가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잡다 보니 우리 교육의 방향이 ‘된 사람’보다 ‘난사람’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1명의 난사람을 위해 99명의 된 사람들이 들러리가 돼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보가 아님에도 바보 취급을 받는 우리네 현실을 두 사람은 신랄하게 꼬집는다.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졸업생 116명에게 모두 상장을 주어 화제가 됐다. 평소 친구들을 즐겁게 해 준 학생에게는 ‘비타민상’, 아픈 친구를 도운 학생에게는 ‘세상의 소금상’ 등 저마다 칭찬받을 에피소드를 주제로 한 상장을 만든 것이다. 이 학교 교장은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사람보다 된 사람을 만들자”는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대담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책속의 이 한줄#인생#주인공#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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