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식량은 넘쳐나는데… 왜 굶어죽는 사람이 있는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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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지.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갈라파고스·2007년) 》

고교 시절 초등학생을 위한 36쪽짜리 그림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제목이 달린 책은 환경운동가인 도넬라 미도스의 칼럼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당시 63억 명 이상이 살고 있는 지구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딱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했을 뿐인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100명 중 20명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다. 또 43명은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18명은 깨끗한 물조차 마실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었고 부와 자원, 교육은 소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 책을 읽다 보니 “그래도 나는 100명 중에 많이 가진 쪽에 속하는구나.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행복한 편이라는 걸 알고부터 매스컴을 통해 기아 문제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기아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활동가인 장 지글러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도마에 올린다.

배고픔은 우리 이웃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고통이 아니다. 1984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당시 농업 생산력을 기준으로 1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72억8456만 명으로 늘었지만 농업 생산력은 훨씬 더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는다고 한다.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지글러는 전 세계적 식량 과잉의 시대에 비극적인 기아가 나타나는 까닭을 자녀에게 설명해주듯 글을 썼다. 지글러는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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