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정권을 향한 경쾌한 고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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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개봉 이란 영화 ‘택시’… 2015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조카이자 영화에도 출연한 하나 사에이디는 출국 금지 당한 감독을 대신해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국외자들 제공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조카이자 영화에도 출연한 하나 사에이디는 출국 금지 당한 감독을 대신해 제6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국외자들 제공
정권에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20년 동안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 집필을 금지당했다.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공동 연출 형태로 5년간 영화 2편을 만들었다. 마침내 거리로 나온 그는 택시기사가 돼 테헤란 거리를 누비며 15일 동안 영화를 찍었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 ‘택시’는 올해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이란 정부의 출국금지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하얀풍선’ ‘오프사이드’ 등으로 이란의 거장 중 하나로 꼽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55)이다.

영화는 파나히 감독이 이전 영화에서 자주 사용했던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다. 선루프를 조명 삼고 계기판 옆 티슈 통에 카메라를 숨긴 채 촬영한 만큼 영화는 무척 단순하다. 승객이 타고, 내린다. 승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택시기사에게 털어놓는다. 파나히 감독은 일반 테헤란 시민들을 배우로 기용해 현실감을 높였다.

등장인물은 무작위로 선택된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 없이는 우디 앨런도 없다”고 말하는 불법 DVD 판매상을 통해선 영화 상영과 감상의 자유조차 없는 이란 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사고를 당한 남편과 함께 탄 채 울부짖는 여인과 유언을 남기는 남편의 모습에서 이란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태운 조카는 당돌하게 “배급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며 ‘추악한 리얼리즘을 피하라, 폭력을 피하라, 정치·경제 문제를 다루지 말라’ 등 학교에서 가르쳐 준 ‘배급 가능한 영화’의 조건을 읊는다. 마지막 승객은 실제 인권변호사인 나스린 소투데. 그저 배구 경기를 관람하려 했다는 이유로 100일 넘게 수감돼 단식 투쟁 중인 여성 곤체 가바미를 만나러 감옥에 가는 길이다.

‘택시’는 엄혹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고, 크게 무게 잡거나 어깨에 힘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예술가의 집념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조리한 정권을 향한 밝고 경쾌한 고발장이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린다.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택시#베를린영화제#황금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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