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대마불사 안통해” 자율빅딜 나서는 대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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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자발적 구조조정 잰걸음

대기업 간 자율 ‘빅딜’ 시대가 열렸다. 과거 국내 주요 그룹들이 자존심 경쟁을 벌이며 계열사를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대마불사(大馬不死)’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한 대기업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전방위적 자율 구조조정

최근 빅딜을 주도하는 주체는 국내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이다. 지난해 말 방산 및 화학 4사(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를 한화그룹에 넘긴 데 이어 최근 남아있던 화학 3사(삼성SDI 케미칼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를 모두 롯데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화학 3사 매각 작업이 실무적으로 끝나면 그룹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 재편이 또다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SK와 LG 등 다른 주요 그룹들의 사업 재편도 두드러진다. SK텔레콤은 케이블TV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 인수를 논의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최근 자회사인 유비케어 지분을 매각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말 제주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내년 경영 화두를 ‘파괴적 혁신’이라고 밝혔다. 내년에 각종 빅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나올 빅딜 및 인수합병(M&A)은 삼성SDI와 LG화학이 주도하고 있는 배터리 사업 분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배터리 사업은 전기자동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있는 만큼 삼성과 LG그룹이 내부 사업부를 조정하거나 다른 국내외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LG전자는 최근 전기차 부품과 ESS 완제품 사업에 잇달아 진출하면서 LG화학과 중복되는 사업을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율 구조조정은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조선 및 해운업계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유병규 지원단장은 “대기업의 자율 구조조정은 정부가 조선업을 필두로 한계기업을 솎아내는 구조조정에 속도를 높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대마불사’에서 ‘커도 죽는 시대’로

이부영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대기업의 자율 구조조정 배경을 ‘학습효과’에서 찾았다. 그는 “고속성장을 할 때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유리했지만 지금은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도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대기업들이 현 위기 상황에서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재계는 삼성-롯데 간 화학 계열사 빅딜 배경을 석유화학업계가 맞은 위기 상황에서 찾고 있다. 중국에서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이 올라가고 미국에서 셰일가스 기반 화학업체가 나타나면서 국내 화학업계 경쟁력이 약해지자 삼성은 사업 정리를, 롯데는 공격적 투자를 각각 선택한 것이다.

젊은 재계 총수들이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잘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면서 활발한 사업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 삼성-롯데 빅딜 건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7월 초 이 부회장에게 제의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삼성, SK 등이 주도하는 자율적 사업 재편은 향후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주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팀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재편은 그룹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빅딜#자율빅딜#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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