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저처럼 혼자 대한민국에 내려온 탈북자는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는 건가요?”
탈북자 출신 손하나 씨(48)는 26일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이식센터) 담당자로부터 “장기이식 승인 신청 서류를 반려한다”는 전화를 받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 씨는 “동생의 건강은 하루하루 안좋아지는데, 이런 동생에게 신장 하나 주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어찌된 사연일까.
2011년 탈북한 손 씨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에서 한 방을 쓰며 알게 된 주명희 씨(40)와 친자매처럼 지내왔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 가족이 전혀 없다. 그런데 주 씨가 신장이 좋지 않아 2014년 11월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신장 이식을 받아야 완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손 씨는 주 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신장이 잘 맞아 이식이 가능했다.
생존 시 장기기증은 지정 기증(친족 간, 타인 간)과 순수 기증(이식 대상자를 지정하지 않음)으로 나뉜다. 두 사람은 타인 간 지정 기증에 해당된다. 절차는 ‘살아있는 자의 장기기증업무안내 지침’에 따라 손 씨(기증자)와 주 씨(이식대기자)가 등록된 병원에서 이식센터에 승인 신청을 하면 된다.
이에 손 씨는 올해초 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신장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병원에서는 “손 씨는 장기기증을 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거절했다. 손 씨가 가족 등 보호자가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장기 등 이삭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에 따라 기증자는 제출 서류인 ‘장기 등 이식대상자 선정 사유서’에 보호자의 서명과 동의 여부를 적시해야 한다.
그러자 손 씨는 주 씨와 함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았다. 그리고 운동본부의 도움을 받아 보호자 서명 및 동의 여부 부분만 비워놓은 채 필요한 서류를 갖춰 23일 직접 이식센터에 우편으로 승인 신청을 했다. 관련 지침에서는 병원이 승인 신청을 하도록 돼있지만, 상위에 있는 장기이식법에서 ‘기증자는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기 때문에 직접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6일 반려 통보를 받았다. 병원을 통해서 신청해야 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데다 보호자 서명 및 동의가 없다는 이유였다. 양은자 이식센터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친족이 아닌 법적 보호자가 기증 동의 서명을 해서 신청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면서 “만약 손 씨가 법적 보호자를 세워 서명을 받아 신청한다면 접수 후 승인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씨가 법적 보호자를 만들어 동의를 얻는다고 해도 이식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두 사람처럼 타인일 경우 이식센터가 환자와 기증자 간의 친분 관계를 심사한 후 수술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브로커를 통해 장기매매를 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밝혀야 하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초중고를 같이 다닌 정도의 동창 등 오랜 친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의 승인이 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과 규정, 절차가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보다 규제하는데 가깝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의 경우 타인 간 지정 기증은 아예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인 간 기증은 전체 지정 기증의 4% 내외에 불과하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탈북자와 외국인 등 다양한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인데 법은 국내사람 위주로 돼있는 데다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면서 “타인 간 지정일 경우 센터가 실사 등을 통해 장기매매가 아님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보는 등 제도 및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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