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탈북자 친구에 신장 나눠주게 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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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하나씨 “보호자 없다고 거절당해… 예외인정 등 관련法 유연적용을”

23일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손하나 씨(왼쪽)와 주명희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23일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손하나 씨(왼쪽)와 주명희 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습니다. 저처럼 혼자 대한민국에 내려온 탈북자는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는 건가요?”

탈북자 출신 손하나 씨(48)는 26일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이식센터) 담당자로부터 “장기이식 승인 신청 서류를 반려한다”는 전화를 받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 씨는 “동생의 건강은 하루하루 안좋아지는데, 이런 동생에게 신장 하나 주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어찌된 사연일까.

2011년 탈북한 손 씨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에서 한 방을 쓰며 알게 된 주명희 씨(40)와 친자매처럼 지내왔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 가족이 전혀 없다. 그런데 주 씨가 신장이 좋지 않아 2014년 11월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투석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신장 이식을 받아야 완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손 씨는 주 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신장이 잘 맞아 이식이 가능했다.

생존 시 장기기증은 지정 기증(친족 간, 타인 간)과 순수 기증(이식 대상자를 지정하지 않음)으로 나뉜다. 두 사람은 타인 간 지정 기증에 해당된다. 절차는 ‘살아있는 자의 장기기증업무안내 지침’에 따라 손 씨(기증자)와 주 씨(이식대기자)가 등록된 병원에서 이식센터에 승인 신청을 하면 된다.

이에 손 씨는 올해초 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신장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병원에서는 “손 씨는 장기기증을 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거절했다. 손 씨가 가족 등 보호자가 전혀 없다는 이유였다. 장기 등 이삭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에 따라 기증자는 제출 서류인 ‘장기 등 이식대상자 선정 사유서’에 보호자의 서명과 동의 여부를 적시해야 한다.

그러자 손 씨는 주 씨와 함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았다. 그리고 운동본부의 도움을 받아 보호자 서명 및 동의 여부 부분만 비워놓은 채 필요한 서류를 갖춰 23일 직접 이식센터에 우편으로 승인 신청을 했다. 관련 지침에서는 병원이 승인 신청을 하도록 돼있지만, 상위에 있는 장기이식법에서 ‘기증자는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기 때문에 직접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6일 반려 통보를 받았다. 병원을 통해서 신청해야 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데다 보호자 서명 및 동의가 없다는 이유였다. 양은자 이식센터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친족이 아닌 법적 보호자가 기증 동의 서명을 해서 신청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면서 “만약 손 씨가 법적 보호자를 세워 서명을 받아 신청한다면 접수 후 승인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씨가 법적 보호자를 만들어 동의를 얻는다고 해도 이식을 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두 사람처럼 타인일 경우 이식센터가 환자와 기증자 간의 친분 관계를 심사한 후 수술을 승인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브로커를 통해 장기매매를 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밝혀야 하는 것.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초중고를 같이 다닌 정도의 동창 등 오랜 친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의 승인이 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과 규정, 절차가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보다 규제하는데 가깝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의 경우 타인 간 지정 기증은 아예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타인 간 기증은 전체 지정 기증의 4% 내외에 불과하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탈북자와 외국인 등 다양한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인데 법은 국내사람 위주로 돼있는 데다가 지나치게 엄격하다”면서 “타인 간 지정일 경우 센터가 실사 등을 통해 장기매매가 아님을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보는 등 제도 및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탈북자#신장#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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