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과일 배달에 약 심부름까지… 나? 교도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본보기자, 70회 교정의 날 맞아 수원구치소 일일교도관 체험

제70주년 교정의 날을 이틀 앞둔 2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에서 일일 ‘교도’(9급) 체험 근무를 한 본보 신동진 기자(오른쪽)가 선임 교도관과 함께 폐방 점호 준비를 위해 사동을 점검하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제70주년 교정의 날을 이틀 앞둔 2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에서 일일 ‘교도’(9급) 체험 근무를 한 본보 신동진 기자(오른쪽)가 선임 교도관과 함께 폐방 점호 준비를 위해 사동을 점검하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 제공
“하나 둘 셋 … 일곱, 번호 끝!”

26일 오후 4시 반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구치소 8층 사동(수용자 숙소 건물). 방별로 하루 일과를 마치는 ‘폐방’ 점호가 시작됐다. ‘베테랑’ 선임 교도관의 눈이 철문 너머로 수용자 인원과 동태, 방 안 분위기 등을 살폈다. 점호를 마친 수용자들은 만화책, TV 등을 보며 휴식을 즐기지만 교도관에겐 ‘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는 제70주년 교정의 날(28일)을 앞두고 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수원구치소에서 교도관 체험을 했다. 1996년 국내 최초 도심형 고층시설로 지어진 수원구치소는 외벽이나 망루가 없다. 가운데 공터를 8, 9층 높이의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적정 수용 인원은 1650명이지만 2300명이 넘는 수용자가 머물고 있다. 대부분 미결수여서 작업 없이 운동이나 변호인 접견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수용자들은 수시로 교도관을 찾았다. 사고 우려 때문에 방 안에 온수시설이 없어 수용자가 커피나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온수통을 하루 3번 배달한다. 삶은 계란, 과일 등 부식은 물론이고 약품도 시간에 맞춰 교도관이 직접 ‘대령’한다. 잠이 안 온다거나 약한 감기 증세에도 약을 요구하는 수용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수면제나 진통제를 모아두었다 자살을 기도할 위험이 있어 창문 앞에 서서 수용자가 약을 삼키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이 때문에 초임 교도관 사이에선 “내가 교도관인지 ‘약 셔틀’인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오후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갈 땐 수용자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선임 교도관은 “참기름 통에 인분을 몰래 숨겨 재판 출석이나 검찰 조사 현장에서 뿌린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탈주, 자살 등 수용자에 관한 모든 책임은 교도관에게 있다. 400여 명의 교도 인력이 있지만 평소엔 교도관 2명이 수용자 90명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나마 야간엔 담당이 1명으로 줄어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근무자가 도와주러 올 때까지 방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방 안 ‘왕초’의 군림을 막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용자들이 돌아가며 취침 자리와 식기 당번을 바꾸는지도 점검했다.

구치소 안에선 하루 평균 20건의 크고 작은 난동이 일어난다. 이날도 같은 방 동료와 싸워 입 주변이 피로 물든 수용자가 잡혀왔다. 구치소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기동순찰팀(CRPT) 교도관은 “경찰과 달리 교도관들은 수용자와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대부분 용서해주는 편이다”라고 했다. 문제를 일으킨 수용자가 되레 과잉 진압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아예 채증용 카메라를 함께 가지고 간다.

오후 9시 반 사동의 전등 밝기가 낮아지고 ‘명상의 시간’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20여 분 뒤 수용자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체험을 마치고 구치소 문을 나서는데 철문 위에 걸린 ‘새 출발, 잊지 말아요 오늘을’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던 교도관을 기억하는 수용자는 몇 명이나 될까.

수원=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교도관#심부름#체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