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담뱃세 증가해도 건강증진사업 예산 외면하고 다른 사업에 책정

  • 입력 2015년 10월 26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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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담뱃세 1조1135억원 늘어날 듯 … 금연사업예산은 160억이나 깎여, 의학계 효율적 집행 주문

정부가 국민건강을 증진하겠다며 올 1월부터 담배에 붙이는 세금을 2000원 인상했다. 세수의 일부를 금연치료 관련 보험급여 확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등에 투입하겠다는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인 것으로 드러났다. 금연 관련 예산을 줄이고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보건복지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초 한 갑당 담뱃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르면서 담배부담금 수입은 2014년 1조6000억원에서 2016년 2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대부분 담뱃세로 충당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내년도 사업비 60% 정도를 국민건강보험 지원사업에 책정했다. 기금이 아닌 일반예산을 투입해야 마땅한 의료 관련 연구개발(R&D) 및 정보화, 의료시설 확충사업 등에 사업비의 9.1%, 극빈자 등을 위한 의료비 지원에 사업비의 2.9%를 할당했다. 기금의 고유목적인 건강증진사업비로는 28% 남짓 밖에 배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금연사업 예산마저 올해보다 160억원이나 줄어든 1315억원만 편성했다. 금연치료지원 사업비도 128억원에서 81억800만원으로 36.7% 축소했다.

예산 축소 대상은 올해 새로 시작한 금연사업이 대부분이어서 사업이 졸속으로 착안됐는지 말해준다.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을 자인한 셈이다. 청소년 흡연예방을 위한 학교흡연예방사업 예산은 올해 444억1500만원에서 내년에는 333억1100만원으로 25%나 줄었다.

금연치료는 흡연을 시작하기 전에 개입하는 방법과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개입하는 방법으로 나뉘며, 특히 청소년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금연 치료의 효과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10대는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국 중·고생의 12.1%가 담배를 피운다.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흡연의 문제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행동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14세 이후부터는 흡연이 건강에 위험하다는 경고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학교흡연예방사업 예산을 줄인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급격한 담뱃세 인상에 따른 흡연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자 추진한 금연지원사업은 취지가 퇴색하고 내실이 떨어져 결국 담뱃세 인상이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증세에 치중한 ‘나쁜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정부가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내년도 담배소비량을 올해보다 6억갑이 증가한 34.6억갑이 소비될 것으로 추계했고, 이는 세수로 따지면 개별소비세·부가가치세 등 중앙정부 세수는 6089억원, 건강증진부담금은 5046억원 등 모두 1조1135억원이 올해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고 밝혔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미진한 사업부분은 줄이는 게 바람직하긴 하지만, 국민건강증진과 금연 목적으로 담뱃값을 올린 점을 고려할 때 금연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축소하는 것은 정부 금연정책과 부합하는 예산 편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의료 관련 연구개발과 정보화, 의료시설 확충, 의료비 지원 등 건강증진기금의 목적에 맞지 않은 사업은 일반회계로 이관하고 기금의 애초 목적인 건강증진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해골을 연상하는 이미지로 국립발레단원들이 흡연의 해악을 묘사한 공익광고를 지상파TV를 통해 내보내는 것도 금연사업비 지출이 부진한 것을 해소하고 여론의 질타를 모면하기 일한 임기응변책으로 분석된다.

의학계도 최근 금연 관련 정부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그동안 여러 학회가 금연 관련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게 자칫 헤게모니 싸움으로 비칠 수 있었던 점을 우려, 대한의학회가 중심을 잡고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흡연 연구는 흡연을 니코틴중독으로 보는 정신건강의학회,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흡연 관련 폐질환에 초점을 맞춘 호흡기내과학회, 실제 흡연치료 관련 임상 데이터가 많은 가정의학회 등이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며 종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최근 정부의 구태의연하고 비효율적인 금연사업 관련 예산지출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의학계가 똘똘 뭉쳐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으로 늘어난 세수를 행정부의 쌈짓돈처럼 아무 데나 필요할 때마다 투입해서는 안된다. 금연사업을 효율적인 방향으로 리모델링하고 일관성 있게 적극 추진해야 한다.

취재 = 현정석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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