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우리나라에도 ‘코르시카’는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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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보석 코르시카 섬…
그림같은 해변보다 인상적인 건 주민과 가축들의 행복한 삶
눈부신 경제성장 이뤘지만 자살률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
방치했던 숲, 시골, 섬에 우리의 풍요로운 미래가 있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친구에게 아름답고 특이한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니 코르시카에 가보라고 권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고풍스러운 소도시의 매력’ 같은 말이 과장이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섬 내부의 원시적인 삼림이었다. 깊은 산속 울창한 숲에는 소, 염소, 돼지 같은 가축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아침이면 돼지들이 자기들끼리 숲 속으로 출근해 도토리를 먹으며 종일 놀다가 해질녘이면 주인이 따로 부르지 않아도 우리로 되돌아간다. 이 섬 주민들은 자기네 돼지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고기가 맛있다고 자랑한다. 돼지들은 종내 햄이나 베이컨이 되어 삶을 마감하겠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정말 유쾌해 보였다.

물론 행복해 보이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하고 아니고를 떠나 아주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들어보기 힘든 특이한 폴리포니(다성악) 민속음악 또한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프랑스어와 코르시카어 두 가지 언어로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에서 대개 프랑스어는 페인트칠로 지워져 있다. 코르시카는 거칠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섬이었다.

이곳을 천혜의 낙원인 것처럼 이상화할 생각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인데 슬픔과 고통, 갈등과 투쟁이 왜 없겠는가. 그래도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인 먼 이역 땅의 풍경을 접하면서 이를 거울삼아 우리를 되돌아보았다.

우리나라는 천하의 빈곤한 식민지 국가로 출발하여 세계가 놀라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성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발전이 어느덧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성장이 멈칫하면서 그동안 누적되었던 문제들이 분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취업난으로 인해 불안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사회 갈등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시골의 많은 마을들은 젊은 사람 구경하기 힘들고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들만 남아서 조만간 폐촌(廢村)이 될 터이다. 아름답던 금수강산이 적막강산이 돼 가는 중이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완전 바닥이다. 끔찍한 입시 전쟁에 시달린 청춘들은 큰 꿈을 꾸기보다 약간의 소비와 허망한 오락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우리 사회는 현재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성공을 구가해 왔던 발전 방식은 빈곤 탈출과 부의 획득이라는 1차 과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냈다. 대량 생산과 도시 과밀화를 동반한 무지막지한 발전 방식은 더이상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지 않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경제성장을 중단한다든지 물질적 요소를 전부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흔히 부탄 같은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도가 높은 나라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이 부탄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다 버리고 빈곤한 농업 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이 답은 아니다. 다만 경제와 문화와 자연이 어떤 관계를 맺는 게 좋은지 근본적인 고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중요한 힌트는 그동안 방치했던 숲과 시골, 섬이다. 어쩌면 사람 손이 안 닿았던 곳일수록 큰 미래 가치를 지녔는지 모른다. 장래 가장 유망한 분야로 농업과 임업을 꼽는다. 그것은 가난과 고역에 시달리던 지난날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첨단 과학기술과 우리의 전통적인 지혜가 섬세하게 결합하여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고장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코르시카나 스위스, 오스트리아, 노르웨이처럼 사람들이 자연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축구에서 흔히 운동장을 넓게 쓰라고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국토를 훨씬 더 넓게 활용할 방안을 찾아보자.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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