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구걸’ 12억 챙겨 사라진 남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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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부부 16억 모았지만, 남편 5년전 가출… 생사도 몰라
아내, 관보 등 게시 ‘공시송달’ 이혼訴… 법원 “위자료에 재산 절반 분할” 판결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모 씨(68)와 최모 씨(59·여) 부부의 생계 수단은 구걸이었다. 1976년 결혼해 4남 3녀를 둔 이들이 30년 넘게 구걸로 모은 재산은 확인된 금액만 15억9200만 원. 부부는 남편 장 씨가 가정의 경제권을 독점하고 자녀들까지 동원해 구걸을 시켜 다툼이 잦았다.

아내는 ‘자녀들만큼은 구걸시키지 말자’며 반대했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의 욕설과 손찌검뿐이었다. 자녀들에게도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던 장 씨는 자녀들이 장성해 더이상 완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자 2010년경 시중 은행 4곳에서 현금 12억여 원을 출금해 자취를 감췄다. 실제 장 씨 명의의 순재산은 서울 강남 소재 아파트와 은행에서 빌린 부동산 대출금까지 합하면 20억 원에 육박했다. 반면 아내 최 씨 이름으로 된 재산은 0원. 최 씨는 거주지는 물론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남편으로부터 살고 있는 아파트라도 지켜보겠다는 심정에 이혼을 결심하고 지난해 법원 문을 두드렸다.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부장판사 권태형)는 최 씨가 제기한 이혼청구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는 이혼하고 남편은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판결을 내렸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산 취득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부부가 노력해 형성 또는 유지한 공동 재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재산분할 비율을 50 대 50으로 해 7억9600만 원씩 나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도 15억여 원이 구걸만으로 형성된 재산인지 부동산으로 증식된 재산인지, 재산 관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판결은 3년 이상 생사를 알 수 없거나 상대 배우자의 거주지나 연락처를 모르는 경우 등에 한해 이뤄진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소송 상대방에게 서류를 송달할 수 없을 때 당사자 신청이나 법원 직권으로 법원 게시판에 사유를 게시하거나 관보 등에 공시해 상대방이 소송 제기 사실을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시송달에 의한 이혼 판결은 일방의 주장을 근거로 내려진다는 점에서 맹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판결 사실을 안 때로부터 2주 내에 ‘추완 상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상대방이 공시송달 이혼 판결 확정 후 재산분할이 집행될 때서야 이혼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추완 항소를 제기해 1심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구걸#16억#시각장애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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