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대형 복지’ 절반이 중앙정부 사업과 완전 중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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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대상된 지자체 年 5억이상 ‘대형 복지’ 283건 분석해보니

정부가 최근 유사 중복 성격이 강하다며 잠정적 정리 대상으로 분류한 지방자치단체의 대형 사회보장사업 중 절반 정도가 이미 중앙정부 사업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추가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자체가 시행하는 대형 사회보장사업들 중 많은 수가 중앙정부 사업을 보완하기보다 그대로 따라 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뜻이다.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사업 범위 밖에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지원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9일 동아일보는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가 복지사업 정비 및 복지재정 효율화 과정에서 유사 중복 사회보장사업으로 분류한 지자체의 1496개 사업 중 연간 예산 규모가 5억 원 이상인 283개 사업을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복지정책)팀을 통해 분석했다.

그 결과 134개(47.3%) 사업이 복지 사각지대나 새로운 수혜자 발굴 및 지원 기능은 거의 없고, 중앙정부의 유사한 사회보장사업 대상자들에게 추가 비용이나 서비스를 지자체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지원하는 게 목적이었다.

정 교수는 “134개 사업은 사업 대상자나 취지 측면에서 중앙정부의 사업들과 ‘완전히 중복’되는 성격이 강하다”며 “완전 중복 사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대승적 자세로 실효성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따져 조정할 부분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안팎에서도 이런 완전 중복 유형의 지자체 사회보장사업들이 ‘정리 대상 리스트’에 오른 사업들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사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완전 폐지가 아닌 일부 조정만 이루어져도 비용 절감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들 중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38개(28.3%)나 된다는 건 큰 부담으로 꼽힌다. 사회 취약계층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형편이 더 어려운 장애인의 경우 그동안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복지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 연금도 2010년에야 정식으로 도입됐다.

다양한 맞춤형 지원제도로 운영되는 저소득층 관련 사업(37개·27.6%), 실생활과 밀접한 보육(19개·14.2%) 관련 사업에도 완전 중복 성격이 강한 게 많다는 점도 심각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국민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사회보장사업들이라 이를 조정해야 할 경우 ‘선거’와 ‘민심’에 민감한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을 조정할 땐 원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현금 지급형 사업은 축소하고 사람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사업은 유지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복지 합리화와 지자체의 포퓰리즘 막기에만 연연한 나머지 지나치게 성급하게 조정 대상을 발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사회보장위원회의 한 위원은 “현재 주어지고 있는 복지를 줄이는 작업은 어떤 형태로든 상당한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더 커지고 있는 면도 있다”며 “정부가 체계적인 실태조사와 현장 점검을 한 뒤 구체적인 기준과 방침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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