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아직은 낯선 동네 그래도 나의 동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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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칙칙칙’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앞집, 옆집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밥 짓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첫 번째 작업실이 있었던 동네의 밥집이다. 이름은 ‘가정식당’. 이름처럼 집에서 만든 밥 반찬 국을 주던 곳이다. 정말 이름처럼 가정집 주방에서 아주머니 두 분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은 식탁과 방석이 놓인 방에서 식사를 한다. 누구는 안방에서, 누구는 문간방에서 밥을 먹는다. 아, 물론 방문은 모두 떼어져 있다. 식탁은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인데 주방 쪽 식탁 두 개, 작은 방에도 식탁 두 개, 큰 방에는 식탁이 다섯 개가 있으니 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다. 식당 바로 옆에는 딱 하나의 회사가 있었는데 낮 열두 시에 맞춰 가면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처럼 집밥이 먹고 싶은 젊은 동네 주민이나 밥 짓기 귀찮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자주 찾는 곳이었다. 영업시간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세 시. 점심식사를 위한 식당인 셈이다.

작업실을 이사한 지 일 년이 넘어가는 요즘에도 그곳이 종종 생각나는 것은 식당 아주머니 두 분 때문이다. 동료와 나는 점심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업 덕분에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에 식당을 찾곤 했다. 대략 오후 한 시에서 두 시 사이. 근처 직장인들이 모두 빠지고 동네 몇몇 주민이 한가롭게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주 다니다 보니 얼굴이 익으셨는지 매번 잘 챙겨주셨다. 아가씨들이 반찬도 남기지도 않고 맛있게 잘 먹는다면서 말이다. 어느 날은 점심도 못 먹고 돌아다니다가 귀가하는 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시간은 오후 네 시, 그러니까 식당의 영업시간이 끝난 시간이었다. 그 앞을 지나치다가 불이 켜져 있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 분은 뒷정리를 하고 계셨다. 다행히 우리를 알아보셨고 얼른 들어오라며 가스불을 켜셨다. 잘 성사됐어야 할 일이 어그러져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날이었다. 밥 짓는 소리, 뭇국이 끓는 냄새, 고소한 기름에 전 부치는 소리가 그 마음을 매만져 주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계산하고 나갈 땐 남은 전을 싸놓은 봉지를 손에 쥐여주시기도 했다.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갔을 땐 우리처럼 자주 이용하던 직장인이 이직하게 되었다며 아주머니 두 분께 인사를 하는 모습을 봤다. 그 직장인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또 오겠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식탁에 반찬이 놓이고 우리도 아쉬운 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 저희도 이사 가요” 라는 말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 다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네. 아쉬워라. 아쉬워” 하시며 평소보다 더 챙겨주셨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울컥하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먹고 또 오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 주셨는데 그 온기를, 마음의 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식당이 있던 그 동네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동네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식당이 잘 있는지 확인만 할 뿐, 시간이 맞지 않아 아주머니 두 분은 뵐 기회가 없었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시간을 내서라도 꼭 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이사하고 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 정착한 이 동네에서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밥을 짓는 앞집에,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생활하는 터전에서 다정하게 눈인사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인사가 별것 아닌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이 동네에 잘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줄 때도 있다. 나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던 낯선 동네가 나의 동네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눈 동네 주민을 굳이 꼽자면 비타민과 진통제가 필요해 한 주 간격으로 들렀던 동네 약국의 약사다. 귀찮을 법한 질문에도 꼼꼼히 알려주면서 “직업은 모르겠지만, 쉬엄쉬엄 일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가정식당 아주머니께 느꼈던 온정을 전달받는 기분이었다. 매일 약국에 가서 약을 살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니 하루에 한 번은 꼭 타야 하는 마을버스 기사 분께라도 먼저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언제까지 지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야 할 나의 동네이니까.

이원희 아베크 매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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