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핵심 빠진 勞使政합의, 국회서 ‘맹탕 노동개혁’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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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어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사정(勞使政) 대표가 그제 잠정합의한 노동시장 개혁안을 진통 끝에 수용했다. 중집에서는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분신을 시도하는 등 강경파의 반대도 나왔으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핵심쟁점은 제도개선위에서 논의하기로 한 만큼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설득해 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1년 넘게 끌어온 노사정위원회가 파국을 피하고 오늘 대타협을 선언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합의안 내용이나 야당과 강성 노조의 반응을 보면 ‘9·13 노사정 합의’는 노동개혁의 시작에 불과할 정도로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다.

무엇보다 노동개혁의 핵심이어야 할 노동유연성 관련 조치가 “나중에 협의한다”는 식으로 사실상 제외돼 ‘대타협’이라고 박수치기 어렵게 됐다. 저(低)성과자 해고 기준을 명확히 하는 일반해고 지침, 임금피크제 시행의 근거가 되는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라는 단서를 붙여 불씨를 남긴 셈이다. 관련 당사자들과 대안을 마련키로 한 근로자 파견 규제 완화, 비정규직 기간 연장 문제도 노동계와 재계의 갈등을 키울 우려가 있다. 반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마련되는 재원을 청년고용에 활용한다’처럼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부분과 사회안전망 관련은 거의 대부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이래서야 고임금 대기업 정규직과 저임금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의 격차를 줄이고 일자리를 늘려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노동개혁의 근본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정부가 노사정 합의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지나치게 양보했다며 공무원연금 개정 같은 ‘맹탕 노동개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어제 국정감사에서 “취업규칙 변경 및 근로계약 해지 기준 등을 명확히 하는 지침을 노사 협의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가 ‘노사와의 충분한 협의’ 조항을 무기로 반대를 하더라도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을 위해 필요한 행정조치를 다 해야 할 것이다.

어제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노사정 합의를 반영한 노동 관련 5개 법안을 당론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합의를 ‘강압적 합의’ ‘노동계의 항복문서’라고 몰아붙이며 노사정위에 참여하지도 않은 강성민주노총의 의견 수렴을 주장하고 나섰다. 관련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도 새정치연합이 맡고 있고 야당결재법이라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도 버티고 있어 자칫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에 법 개정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노사정 상생의 정신을 살리고 한국경제의 재도약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신속하게 후속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야당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민노총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국회 특위 설치나 공무원연금법 개정 국회 논의에서 자행된 ‘법안 끼워 팔기’ 같은 구태(舊態)를 반복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20, 30대를 포함한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개혁에 찬성하는 현실이다. 야당이 강성 노동계의 주장에 휘둘려 그보다 훨씬 많은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노동개혁#임금피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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