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에 전과 36범된 지적장애女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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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방치하고 사회는 도움 외면한 사이…

지적장애 2급에 절도 전과 36범인 김모 씨(27·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형사가 “왜 훔쳤느냐”고 물었지만 대답 대신 어린아이처럼 씩 웃었다. 이어지는 질문에 어눌한 말투로 간신히 답하기 시작했다.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김 씨는 아버지, 언니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지적장애를 앓는 딸을 방치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장애인 지원 혜택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언니도 결혼하면서 집을 떠났다. 김 씨는 고등학교도 진학하지 않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집에서 나왔다.

배가 고파 음식과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2005년 열일곱 살 때 특수절도죄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반성하라는 취지였지만 사실상 방치였다. 홀로 강릉 일대를 떠돌며 습관처럼 절도를 저질렀다. 2013년 7월 야간주거침입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올해 초 절도죄로 교도소에서 징역 8개월을 살았다. 김 씨의 진술에서 여러 번 죗값을 치르는 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은 없었다.

김 씨는 지난달 10일 춘천교도소를 나와 다시 홀로 떠돌았다. 출소 당일 음식점에서 휴대전화를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절도로 의식주를 해결했다.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남성과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남자는 성관계를 마치고 “밥 좀 먹고 싶다”는 김 씨에게 5만 원을 줬다. 출소 보름 후 김 씨는 서울 광진구의 한 빌딩 현관에서 이모 씨(74·여)가 한눈판 사이 지갑과 휴대전화를 훔쳐 달아났다가 15시간 만에 붙잡혔다.

지적장애인이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전과자로 전락하는 경우는 김 씨뿐만이 아니다. 지적장애를 포함한 정신장애인 범죄자수는 2012년 5298명에서 지난해 6265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5월 지적장애인 A 씨(23·여)는 서울 강동구의 한 주유소에 들어가 주인의 지갑을 갖고 나오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당시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절도를 저질러 집행유예 상태였다. 지방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절도를 하거나 술집 접대부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피해자의 선처로 풀려났지만 여성 보호시설에서는 지적장애인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A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절도와 성매매로 생계를 해결하던 고향으로 홀로 돌아갔다.

장애인 피의자의 법적 지원을 돕는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지적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죗값만 묻기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사정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김 씨도 첫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의 옆에 조력인이 있었다면 범죄자가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를 검거한 서울 광진경찰서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장애인연금 신청을 도왔다. 하지만 전과 36범인 그는 구속을 피할 수 없어 교도소에 가야 할 처지다. 경찰 관계자는 “단 한 명이라도 김 씨를 보호하고 돌봐줄 사람이 있었다면 10년 동안 범죄자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죄를 쉽게 용서할 수 없지만 배가 고파서 죄를 짓게 된 사정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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