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난민 울리는 ‘깡통 다가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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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주택 세입자 보호 허술

전세난에 아파트를 떠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찾는 세입자가 늘며 소형주택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신축 빌라들이 들어서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다세대주택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전세난에 아파트를 떠나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찾는 세입자가 늘며 소형주택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신축 빌라들이 들어서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다세대주택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30대 미혼 직장인 김모 씨(여)는 지난달 자신의 서울 강동구 다세대주택 지하 전셋집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방바닥에서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장판을 들춰본 그는 깜짝 놀랐다. 납작한 철판 아래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철판 밑에는 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맨홀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전세금 5000만 원을 주고 맨홀 위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에서 잠을 잤다고 생각하니 너무 분하다. 집주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 떼고 손해배상도 거부하고 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세난에 지친 서민들이 몰려드는 다세대·다가구 등 소형주택이 서민주거 보호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주택 등 소형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6만7791건으로 전체 주택 전월세 거래량의 55%를 차지했다. 전월세 수요가 늘고 임대료가 상승하자 임대사업자들이 급하게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지어 세를 놓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부실하게 지어진 주택으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따르면 주택 하자 등으로 인한 분쟁조정 건수는 2013년 12건에서 2014년 104건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는 56건이 접수됐다.

전문가들은 세입자들이 집주인과의 다툼을 꺼려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건축업자들이 봄철에 주택을 많이 지었는데 전월세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요즘에는 겨울이나 여름 장마철에도 집을 짓는다”며 “이 때문에 결로(結露), 곰팡이 발생 등의 문제가 있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늘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원룸형 다가구 주택에 혼자 사는 박모 씨(31)는 “모텔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다가구주택에 살다 보니 세입자는 40명인데 계량기는 1개뿐”이라며 “사용량에 관계없이 가구 수로 나눠 내다 보니 가스요금이 10만 원이 훌쩍 넘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의 전세금이 아파트 수준으로 올라 ‘깡통주택’에 대한 불안도 크다.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세입자들이 집단으로 보증금을 떼이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에 사는 세입자 30여 명은 최근 1인당 최대 8000만 원의 보증금을 날렸다.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챙긴 집주인이 잠적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건물에는 근저당까지 잡혀 있어 세입자들은 꼼짝없이 보증금의 일부를 떼일 상황이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도 보증금을 되찾기 쉽지 않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7월 평균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아파트가 90.3%였던 반면 연립·다세대주택과 단독·다가구주택은 각각 77.2%, 75.7%에 그쳤다.

다가구주택의 세입자가 또 다른 세입자에게 단기간 세를 내주는 전대(轉貸) 피해도 발생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집주인의 동의 없이 전대로 세를 살다가 집주인에게 들켜 쫓겨날 수 있다”며 “1차 임차인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회수하고 사라져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달 10일부터 단독·다가구, 연립·다세대주택의 주택가격을 공시가격의 130%에서 아파트와 같은 수준인 150%로 올려 더 많은 세입자가 보증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보증상품 가입자 수가 더 많은 서울보증의 경우 여전히 130%에 머물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소형주택 세입자들을 위해 대출이나 보증상품의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천호성 기자
노덕호 인턴기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세무회계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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