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中 이번엔 ‘선사시대 동북공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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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민족과도 관련있는 요하문명을
“중원문명의 원류” 자국史로 편입… 박물관-연구시설 세워 역사왜곡

16일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 ‘아오한치 박물관’. 현재 지방정부는 이 박물관을 대신해 더 큰 규모로 들어설 ‘네이멍구 홍산문화 박물관’을 올 1월부터 짓고 있다. 아오한치=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6일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 ‘아오한치 박물관’. 현재 지방정부는 이 박물관을 대신해 더 큰 규모로 들어설 ‘네이멍구 홍산문화 박물관’을 올 1월부터 짓고 있다. 아오한치=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중국이 우리 민족과 무관하지 않은 요하(遼河)문명을 자국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2007년 완료한 데 이어 2003년부터는 요하문명을 자국 역사에 흡수하려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진행 중이다. 최근 관광 수익을 노리는 중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 참여하면서 역사왜곡이 심화되는 등 ‘선사시대 동북공정’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동아일보와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는 이달 13∼18일 중국 현지답사에서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문물국이 츠펑(赤峰) 시 아오한치(敖漢旗)에 홍산문화를 집중 전시하는 ‘네이멍구 홍산문화 박물관’을 올 초부터 짓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박물관은 중원 문명의 원류로 홍산문화를 조명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아오한치 선사 고고 연구기지’를 세워 홍산문화 유적에 대한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는 “중원 문명의 원류로 요하문명을 규정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며 “이대로 가면 고조선을 포함한 한반도 상고사에 대한 해석마저 축소,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 요하문명(遼河文明)

요하(遼河·랴오허) 강은 중국 동북지방 남부를 통과해 보하이(渤海) 해로 흘러든다. 기원전 7000년까지 거슬러가는 이 문명은 요하 주변의 다양한 신석기문명을 통칭한다. 기원전 4500년경 발생한 홍산(紅山) 문화가 대표적이다. 우리 학계는 이 문명의 주체가 동이족(東夷族)이며 중원과 한반도에 각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15일 찾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 시 얼다오징쯔 유적. 하가점 하층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주거지 등 거대한 촌락 유구를 
철골 구조물로 감쌌다. 이 유적의 발견 이후 건설 중인 고속도로 방향이 바뀌었다. 츠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5일 찾은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 시 얼다오징쯔 유적. 하가점 하층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주거지 등 거대한 촌락 유구를 철골 구조물로 감쌌다. 이 유적의 발견 이후 건설 중인 고속도로 방향이 바뀌었다. 츠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中 박물관, 요하문명-한반도 교류증거 빗살무늬토기 외면 ▼

본보-경희대 인문학연구원, 中선사시대 동북공정 현장 답사



《 중국 정부의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은 동북공정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넓은 신석기∼청동기 시대를 아우른다. 우리 학계는 요하문명이 한반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동이족(東夷族) 문화권으로 보고 있다. 중국 측 주장대로 중원 문명의 원류로만 규정지을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 동아일보와 경희대 인문학연구원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가 이달 13∼18일 찾은 요하문명 유적지에서는 중원에서 볼 수 없는 빗살무늬토기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됐다. 이번 답사는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한 ‘고조선과 북방문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

16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츠펑(赤峰) 시 아오한치(敖漢旗) 박물관. 츠펑 시에서 자동차로 2, 3시간 거리의 한적한 시골에 제법 규모 있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홍산문화 대표 유물인 옥저룡(玉猪龍·돼지를 닮은 용 모양의 옥기)이 벽면 중앙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옥(玉)과 채문토기(彩陶·채색 안료로 무늬를 그린 토기)들이 집중적으로 전시돼 있었다.

옥과 채문토기는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 가운데 그나마 중원 문명과 가까운 요소로 간주되는 출토품들이다. 홍산문화 유적에서는 한반도와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빗살무늬토기가 다수 발견됐지만 아오한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 박물관은 채문토기만 보여주고 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고고학)는 “홍산문화가 중원 문명의 원류로 부각되면서 예외적으로 출토되는 채문토기가 요하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로 둔갑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답사단은 이 박물관이 조만간 헐리고 더 큰 규모의 ‘네이멍구 홍산문화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오한치는 츠펑 시 외곽의 7개 기(旗·현에 해당하는 몽골식 행정단위) 중 하나로 인구가 58만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 중앙부처인 국무원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의 지원으로 대형 박물관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손잡고 홍산문화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셈이다.

박물관 앞에 비치된 대형 입간판에는 올 초부터 짓고 있는 홍산문화박물관이 중원 문명의 원류로서 홍산문화를 조명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 교수는 “각 지방정부가 관광자원화 차원에서 홍산문화박물관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며 “중화문명의 원류라고 하면 전국에서 관람객들이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 랴오닝 성 랴오양 시 박물관 안에 설치된 연나라 장수 진개의 동상. 진개는 고조선을 침략해 요동 땅을 빼앗았다. 랴오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중국 랴오닝 성 랴오양 시 박물관 안에 설치된 연나라 장수 진개의 동상. 진개는 고조선을 침략해 요동 땅을 빼앗았다. 랴오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선사시대 동북공정’ 나선 중국 지자체·학계

중화문명탐원공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열의는 건설 중이던 고속도로의 방향을 바꿔 놓을 정도다. 15일 찾은 츠펑 시 얼다오징쯔(二道井子) 유적. 흙으로 쌓아올린 수십 개의 주거지와 골목, 토담, 저장갱 등 촌락 유구가 거대한 철골 구조물에 둘러싸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홍산문화와 더불어 요하문명을 대표하는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로 분류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의 마을 유적임에도 보존 상태가 양호해 놀라울 정도였다.

이곳은 고속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돼 2011년 ‘전 중국 10대 고고(考古) 발견’에 선정됐다. 중국에서는 이례적으로 도로 방향이 바뀌면서 다른 유구와 달리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 홍산∼하가점 문화로 이어지는 요하문명을 황하문명에 덧붙여 중원 문명의 원류로 자리매김하려는 국가 시책 덕분이다. 이종수 단국대(고고학) 교수는 “홍산문화는 시기적으로 앞서지만 부족국가(chiefdom) 단계에 머물렀다”며 “얼다오징쯔 유적은 하가점 하층문화부터 초기 국가가 형성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고 말했다.

14일 확인한 랴오닝(遼寧) 성 카쭤(喀左) 현의 ‘런민(人民)대 고고 실습기지’는 요하문명에 대한 중국 학계의 높은 관심을 잘 보여줬다. 온통 옥수수 밭으로 둘러싸여 안내원 없이 찾아가기 힘든 오지에 중국 베이징 소재 명문대인 런민대 고고학과가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전투를 벌이듯 발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런민대는 이른 시기의 하가점 하층문화 유적을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뤼셰밍 런민대 교수(고고학)는 “카쭤 현은 홍산에서 하가점 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기지를 세웠다”며 “학부생 40여 명도 함께 숙식하면서 발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츠펑 시 랴오중징 청동기 박물관에 전시된 비파형동검. 비파형동검 몸체에 초원 유목민들이 쓰는 인물장식 손잡이가 결합돼 있다. 츠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중국 츠펑 시 랴오중징 청동기 박물관에 전시된 비파형동검. 비파형동검 몸체에 초원 유목민들이 쓰는 인물장식 손잡이가 결합돼 있다.
츠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요하문명의 진정한 실체는?

중원 중심의 역사 해석은 요하문명의 주축인 요서뿐만 아니라 요동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3일 중국 랴오닝 성 랴오양(遼陽) 시 박물관. 신석기시대 첫 전시실에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인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흡사 한국 박물관의 선사시대 전시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조선과 고구려 등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요동지역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랴오양은 예부터 한반도와 밀접했던 요동지방의 중심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60m² 남짓한 아담한 전시실을 돌아 나가자마자 투구를 쓴 채 긴 창을 쥐고 선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의 거대한 동상이 막아섰다. 동상 뒤로 모든 전시실에서 비파형 동검이나 미송리식 토기들은 자취를 감췄다. 연(燕), 진(秦), 한나라 등 중원 문명 위주의 유물들만 빼곡히 전시돼 있을 뿐이었다.

고조선을 침략해 요동지역을 뺏은 진개의 동상을 비파형 동검 전시실 앞에 배치한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얘기가 답사단에서 흘러나왔다. 실제로 랴오양을 한때 점령한 고구려를 다룬 전시실도 다른 전시실로 이어지는 통로로 보일 정도로 초라했다. 그나마 고구려 전시실 전면은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 태종을 그린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요하문명이 중원도 한반도의 것도 아니라면 실체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15일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 시 랴오중징(遼中京) 청동기 박물관에서 본 하가점 상층문화의 특이한 비파형동검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줬다. 전형적인 비파형동검 몸체에 초원 유목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인물 장식의 손잡이가 붙어 있었다. 두 가지의 이질적인 문화가 하나의 유물에 결합돼 있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 지역 하가점 상층문화에는 중원과 초원지역, 한반도의 요소들이 모두 섞여 있다”며 “결국 요하문명은 한반도와 중원을 잇는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오한치·츠펑·랴오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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