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노재명 관장 “고구려 무용총 벽화, 조지아 전통 춤에 꿈틀대더군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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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산맥 민속음악 여행/노재명 지음/407쪽·4만2000원·채륜
‘코카서스산맥 민속음악 여행’을 쓴 노재명 관장

1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이 아르메니아 악기 우드를 들었다. 그의 왼쪽은 조지아 악기 판두리와 합창 음반, 뒤쪽엔 현지 거장들의 손도장과 서명. 노 관장은 “귀국할 때 우드를 비행기 화물칸에 실으며 ‘파손주의’ 스티커를 30개는 붙였다”며 웃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이 아르메니아 악기 우드를 들었다. 그의 왼쪽은 조지아 악기 판두리와 합창 음반, 뒤쪽엔 현지 거장들의 손도장과 서명. 노 관장은 “귀국할 때 우드를 비행기 화물칸에 실으며 ‘파손주의’ 스티커를 30개는 붙였다”며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현대판 동방박사 이야기다.

길잡이는 하늘에 뜬 눈부시게 큰 별이 아니다. 유튜브 속 짤막한 춤 동영상 한 편. 국내 출판사에 전례 없는 코카서스산맥 지역 음악 탐방기가 나온 사연이다.

12일 만난 저자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46)은 그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2011년 가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서아시아 국가 조지아의 전통 춤을 봤다. ‘아니, 이것은….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있는 그 춤동작…?!’ 노 관장의 머릿속에서 고교 시절부터 강박증처럼 박혀 있던 기묘한 이미지가 동영상이 돼 움직이고 있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팔을 뒤로 젖힌 그 괴상한 춤 동작.

“무작정 현장을 확인하고 싶단 생각만 들었어요.” 국내에 그쪽 언어를 배울 만한 곳은 없었다. “인터넷 사전에서 조지아어 주요 단어 200개를 찾고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독학했습니다.”

2012년 4월 17일, 인천공항 출발. 카타르, 아제르바이잔을 경유해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에 그가 도착했다. 손에 쥔 단서는 하나뿐. 인터넷에서 찾아 인화한 생면부지의 음악가, 시모나 루아제의 사진 한 장. 우여곡절 끝에 한양의 김 서방, 아니, 조지아 동부의 포도마을에 사는 루아제를 찾아냈다. “다짜고짜 춤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죠.” 루아제는 문제의 춤, 심디를 직접 춰 보였다. 노 관장은 머릿속이 열리는 듯했다. 우리나라처럼 숱한 외세의 침략을 겪은 조지아인들의 강한 기백을 담아 만든 춤이라 했다.

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아리 아라리 아랄로오오’가 반복되는 그곳의 농부가(農夫歌) 오로벨라는 아리랑과 판박이. 현지에서 조지아 민요들을 채록해 귀국하자마자 ‘조지아 포도마을 음악 여행’이란 음반부터 냈다.

노 관장은 지난해까지 조지아와 인근 국가 아르메니아를 아홉 번이나 다녀왔다. “아르메니아엔 ‘오로르’란 자장가가 있어요. 강원도 아라리 같죠.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정박지인 아라랏 산(아라라트 산)이 거기 있어요. 호로베르, 오로벨라, 오로르, 아라랏산, 아리랑…. 우연일까요? 비파와 닮은 판두리, 피리와 흡사한 두둑, 쟁기, 베틀, 시래깃국, 마늘과 쑥, 곶감, 줄타기, ‘해야해야 나오너라’란 동요…. 그쪽 문물과 풍습을 연구할수록 우리와 비슷해 소름이 끼쳤습니다. 실크로드 양쪽 끝에 달린 주머니처럼 우리와 그들이 동단과 서단에서 문화 저장소 역할을 한 것 아닐까요.”

이번 책에 그는 부록 CD ‘아르메니아 음악 여행’도 넣었다. “국악 연구자가 왜 자꾸 밖으로 나가냐고요? 우물을 깊게 파려면 그만큼 넓게도 파야죠.”

그는 고교 때부터 해 온 판소리, 아리랑, 국악-대중음악 비교 연구, 박물관 내 6만여 점의 자료 인터넷 데이터베이스화를 병행하면서 틈나는 대로 실크로드 주변국을 더 훑겠다고 했다. “실크로드 사막 어딘가에서 죽더라도 이번 생은 거기 바칠 겁니다.”

노 관장은 10월 초,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난다. 2년간 다섯 차례 이상 현지답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곳에 졸본(고구려의 옛 수도)이란 마을이 있답니다. 산세 험한 코카서스 산맥엔 오래전부터 수백 개의 소수민족이 숨어산다고요. 그 산그늘에서 또 무엇이 절 기다릴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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