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여행 칼럼) 요르단이야기 “무모하지만 괜찮아”

  • 입력 2015년 6월 30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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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한 번쯤 크게 실패하고 완벽하게 무너지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그래서 내겐 당연히 되어버린 언어, 습관, 인맥, 알량한 지식을 총동원해도 물 한 모금 사 먹을 수 없는 곳.

그런 곳에서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몇 날 며칠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자살폭탄테러’라는 단어에서 멈췄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그곳으로 향하는 항공권을 예매했다.

칼럼니스트·포토그래퍼 감성사진사 이두용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난 계획적이다. 실행하는 중간 즈음 포기하기 일쑤지만 계획은 진짜 잘한다. 계획만으로 포상하는 곳이 있다면 난 제법 큰 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나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별로 계획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자주, 멀리 떠나는 일이 많은데도 계획하지 않는다. 여행지 명소를 살뜰히 챙기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어차피 처음 가보는 나라,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조금 헤매도 괜찮다는 주의다.

무모한 여행을 계획하고 요르단이라는 낯선 나라를 선택했다. 항공권을 예매해놓고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아랍문화에 대해 공부를 했다. 하지만 정작 요르단에 무엇이 있고 어떤 것이 유명한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역시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요르단에 첫발을 내딛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왔다는 것을.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암만 공항에 발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TV나 인터넷에서 본 테러조직원의 얼굴과 똑 닮은 아랍인들이 공항에 지천이었다. 그땐 아랍인의 얼굴이 그렇게 무섭게 보일 수가 없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고 일단 시내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 발생. 가져간 달러를 요르단 화폐로 환전해야 했는데 나는 아랍어를 못했고 공항 경찰은 영어를 못했다. 결국, 만국공통어인 바디랭귀지를 구사해 환전을 하고 짐도 찾아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공항. 지금은 암만에 현대식 공항이 생겼지만, 당시엔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공항 건물이 내가 만난 요르단의 첫인상이었다.

어쨌든 요르단에 도착. 택시를 타고 암만 시내로 향했다.


무모한 도전이 익숙해지기까지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암만으로 향하는 길, 가장 저렴한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택시 기사가 뭐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난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도착한 변두리의 허름한 호텔. 할리우드 영화에서 갱들이 총격전을 벌일 때 보았던 건물이 딱 이렇게 생겼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호텔 주인은 영어가 유창했다. 그가 안내한 방은 좁고 냄새도 나는 데다 커다란 바퀴벌레까지 살았지만, 요르단에서 얻은 첫 안식처라는 생각에 며칠간 머물며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그렇게 도착한 요르단에서 난 4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찾아가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한 달은 낯선 것과의 전쟁이었다. 마치 아이가 자랄 때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새롭듯 나 또한 요르단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어린아이였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생각했던 ‘물 한 모금 사 먹을 수 없는 곳’은 요르단이 맞았다. 워낙 더운 곳이라 생각보다 물은 빨리 사 먹었지만 뭔가를 살 때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나중엔 가게에 들어가면 누가 말도 붙이지 못할 만큼 재빠른 동작으로 필요한 것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그럼 알아서 계산하고 남은 돈은 돌려줬다.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많아서 내게 큰 관심을 보일 것 같지 않은 시간,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먹고 있는 메뉴 중 가장 먹음직해 보이는 음식을 골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음식을 먹고 나올 땐 역시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꺼내서 건넸다.

요르단 물가는 생각보다 비쌌다. 가져온 돈으로는 오래 머물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르단에 도착하고 고작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다.



행복이란 단어를 알려준 사람들

난 요르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물론 계획하고 간 것도 아니고 준비해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내겐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는 생각이었고 여행에는 반드시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을 뿐이다.

‘포토그래퍼’라는 단어가 아랍어로 ‘무싸위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난 읽지도 못하는 무싸위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인 명함을 만들었다. 일을 하려면 명함은 필수 아니던가.

동양에서 온 사진작가는 영업(?)을 빌미로 많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먼저 호주에서 온 피터(Peter)라는 친구를 소개받아 호텔을 벗어나 그 친구의 집에서 하우스쉐어를 했다. 방도 넓고 깨끗한데다 무엇보다 월세여서 호텔보다 저렴했다.

피터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선 하루가 멀다 하고 암만 곳곳을 쏘다녔다. 암만 중심에 있는 시타델(성경에 나오는 고대 유적지)에 올라 동네 꼬마들과 빵 한 조각을 나눠 먹기도 하고, 재래시장에 들러 채소나 과일값을 흥정하기도 했다. 동네 곳곳에 있는 ‘샤이(설탕을 듬뿍 넣은 허브차)’ 가게에 들러 차를 마시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랍음악에 어깨를 실룩이기도 했다.

난 내가 걷는 길, 만나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문화가 다르므로 찍으면 안 되는 것과 찍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가능한 한 많이 다니며 찍을 수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처음 보는 동양인이 무서웠는지 날 보며 우는 아이,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기도하러 들어가는 사람들. 도시에 아잔(이슬람 기도문)이 울려 퍼질 때 숙연한 표정으로 모스크를 바라보는 소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7살 꼬마.

그저 지나는 그 누구도 내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무모하게 찾아온 요르단에서 난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어느 순간 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나답게 만든 일들

암만에서 지방으로 여행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차를 렌트했다. 그리고 시내를 벗어나 요르단의 명소인 페트라와 와디럼, 아카바를 비롯해 여러 곳을 다녔다. 시간이 지나고 거쳐 간 마을이 늘어날수록 암만에서만 생활하던 난 반쪽짜리 요르단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르단엔 의외로 문화에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다. 아랍의 특성상 빈부의 차가 심해 자신이 사는 마을 인근조차 여행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난 요르단에서 사진 찍는 일을 했으니 곳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 내가 행복을 느낀 요르단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전시해보고 싶었다. 그것도 그럴듯한 갤러리가 아닌 누구나 와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거리에서. 사실 외지인에게 다소 배타적인 아랍 문화에서 쉽지 않은 생각이었다. 또 한 번의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정확히 1년 뒤에 요르단의 5개 명소에서 거리 사진전과 축제를 열었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노력이 무모한 행사를 기획하게 하고 거리에 무대를 세우는 기적을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도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그들의 한 달 봉급 정도에 해당하는 선물을 받기도 했다.

요르단에 머문 시간은 내게 이전의 인생과 이후의 인생으로 나누는 전환점이 됐다. 무모한 출발과 터무니없는 계획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고 요르단과의 인연에서 멋진 출발이 되어 주었다. 나와 요르단과의 인연은 아직 ‘Ing’다.

월간 아웃도어 편집장, 뮤지션으로 10년 넘게 살면서 책·음반·여행사진을 찍으며 사진에 입문했다. 2009년 중동 요르단 5개 지역에서 사진전과 함께하는 거리 축제를 열었다. 영국 공군이 주최하는 사진전과 심장병 어린이 기금마련 국제행사에 초청 전시했다. EBS <세계테마기행> ‘요르단 편’ 진행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저서로는 <오늘부터 행복하다>(부즈펌)이 있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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