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나미]“이민 가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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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메르스 사태 앞에서 무기력한 정부와 시스템
中企-벤처와의 공생은커녕 공룡처럼 흡입하는 대기업들
이 나라-이 사회에 희망과 의욕 잃은 젊은이들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앞에 무력한 정부와 시스템을 보면서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책임감도 없는 정치권이 제2의 중동 붐을 말할 때 “너나 가라, 중동”이란 비아냥거림으로 대꾸했던 이들은 아마 “이 정권이 하는 게 다 그렇지”라고 생각했을 것도 같다. 국민이 전체적으로 사회의 시스템과 정치권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되면, 경제 동력의 중요한 근간인 의욕, 긍정적인 태도, 책임감도 급속히 사라진다.

경제 발전도 사람들 마음의 산물이다. 책임감 있는 가장과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실하게 공부해서 미래를 준비한다. 무책임한 가장과 자기만 아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를 원망하고 가출하거나 비뚤어질 뿐이다. 기성세대를 믿지 못하고, 사회 시스템과 미래에 대해 의심하며, 어차피 노력해 봤자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나오는 이들의 노예나 기껏해야 집사 노릇밖에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염세주의적 젊은이들만 남는다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가 보이는 공정한 사회가 생산성이 높고, 넓은 세상에 나가 이름을 떨쳐 보겠다는 의욕도 커진다.

하지만 전쟁과 기아를 겪으며 가족에 대한 비장한 책임감으로 무슨 일이든 다 했던 전쟁 세대의 물불 가리지 않은 희생정신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아름다운 북유럽과 프로방스 풍광같이 편안한 선진국 모습만 짝사랑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나 기회 제공 없이 무조건 위험한 제3세계로 나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같이 열심히 일해 보라고 강요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웃 일본만 해도 이미 수십 년간 아프리카, 중동, 남미 연구소 등에서 실용적인 정보를 주어 위축된 젊은이와 기업가들을 독려하고 있다. 중국도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남미와 아프리카 내 금융, 학문, 기술 등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면서 기업가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제 우리가 비비고 들어갈 여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고 선진국에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소위 가장 좋은 대학 졸업장들을 땄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 한국으로 유턴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설령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타국에 간다 쳐도, 그들에게 떨어질 직업은 그야말로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자리뿐이다.

이런 와중에 기계의 부속품처럼 소비되고 버려지듯, 근속 기간이 5년이 조금 넘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예 벤처 창업에 도전하는 씩씩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벤처 생태계는 척박하다. 벤처의 본산인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거리를 누비고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홍보는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한국의 전기차 ‘예쁘자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진국의 바이오 테크 회사나 신약 개발을 하는 제약회사 등이 거대한 규모로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세계 곳곳에 공장을 지어 영리하게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으나, 한국의 연구 투자는 리베이트 논쟁에서 꼼짝을 못한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권력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신생 벤처들을 공룡처럼 흡입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이민 가고 싶다는 젊은이들을 설득할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 감정적 인치(人治)가 아니라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경쟁 국가들이 차근차근 세계를 선점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가고 있다.

메르스 사건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보이는 대신 그저 우리 눈앞에 있는 별로 크지도 않은 떡을 어떻게 나누어 먹느냐에 온 정신을 쏟았던 우리의 업보다.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좀 더 나은 보건 의료 서비스 확충이나 수출 대상국인 외국에 대한 연구는 소홀히 한 채, 그저 복지 논쟁에만 사활을 걸지 않았던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묵묵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젊은 기업가와 산업역군들이 더이상 분노하지 않게 될 날이 오면 좋겠다.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이민#세월호#메르스#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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