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해의 물꼬 튼 韓日정상, ‘새로운 미래’로 이어가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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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도쿄에서 어제 한국과 일본이 각각 마련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축하행사’의 공동 슬로건은 ‘함께 열어요. 새로운 미래를’이었다.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서울의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를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정부 주최의 도쿄 행사에서 “50년간 우호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며 함께 손을 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했다. 냉랭한 양국 관계를 고려하면 양국 정상의 교차 참석은 화해를 향한 출발로서 의미가 작지 않다. 서울과 도쿄의 리셉션에는 각각 700여 명과 1000여 명의 양국 인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두 나라 정상이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강조했지만 미묘한 차이를 감출 순 없었다. 박 대통령은 “가장 큰 장애 요소인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과거사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촉구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과거사 언급 없이 “한국과 일본의 협력 강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아태지역 세력 전이(轉移)에 대응하는 한일,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과 이를 통한 전략적 이익에 방점을 둔 것이다. 두 정상 모두 ‘신뢰’를 힘주어 말하면서도 현재의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공감대는 드러내지 않아 앞으로 갈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어렵게 성사된 양국 정상의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첫 방일로 한일 관계가 풀릴 분위기는 일정 부분 조성됐다. 그러나 한일이 과거와 현재를 외면하면서 새로운 50년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과거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안은 정상이 만나 돌파구를 찾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특사로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접견하면서 “아베 총리가 1965년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이 견지해 온 인식을 확실히 계승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일 정상이 모처럼 나눈 ‘간접 대화’가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해 구체적 미래 비전 논의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1973년 일본 땅에서 납치사건을 겪었으나 1998년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던 김대중 대통령처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50년 후를 내다보는 파트너십을 공동 모색한다면 역사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이 미래 지향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가 석 달 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을 밝혀 한일 관계를 다시 격랑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일본 언론이 한일 정상의 교차 참석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과 정상회담 실현이 불투명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나타낸 것도 한일 간 불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새로운 미래’가 잔칫날 덕담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양국 지도자가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일본의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동북아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책임 있는 국가지도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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