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나, 고졸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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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합격했다는 ‘천재소녀’가 거짓말쟁이로 추락했다. 아직 어린 소녀가 당돌하고 치밀하게 거짓말을 꾸며댄 것도 놀랍지만 그 거짓말에 속아서 호들갑을 떤 어른들의 행태도 민망하다. 이번 일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학력 위조에 번번이 속아 넘어가는 우스운 꼴을 보이는 것은 앞뒤 살필 겨를 없는 지나친 학벌 숭배 때문일 것이다.

이 뉴스를 듣고 세계적인 명문대는커녕 공고 출신이라는 학력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쎄크의 김종현 대표이사가 생각났다. 산업용 X선 검사기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회사의 대표지만 그의 최종 학력은 여전히 고졸(高卒)이다. 학벌 위주의 사회이다 보니 대부분 돈을 벌면 한풀이하듯이 혹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대학 졸업장을 따려고 하는데 김 대표는 요지부동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제품 사면서 사장의 학력을 묻는 사람은 하나도 없던데요.”

맞다. 나도 어떤 물건을 사면서 그 회사 사장의 학력이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사장의 학력도 중요하지 않은데 직원의 학력은 말해 무엇하랴. 그는 147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이 공고 출신이라고 말했다.

“공고 출신 후배들에게 학력에 관계없이 자신의 기술을 사랑하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강원 태백에서 기계공고에 다니던 시절 가장 먼저 등교하고 가장 늦게 하교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제도 직종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그가 잘나가는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창업을 결심한 것도 기술현장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승진할수록 점차 기술직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쉬워 사표를 내고 독창적인 기술 개발에 매달린 끝에 지금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를 일궈낸 것이다. 물론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직원들과 함께 기술을 연구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학벌에 연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나, 고졸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고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아닐까. 설사 세계 최고가 아니라 해도 자신의 일을 진정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 당당하면 거짓말이 필요 없고, 간판 뒤에 숨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윤세영 수필가
#천재소녀#학력#고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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