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정결-순명의 정신으로 위기의 가톨릭 쇄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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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상>예수회의 발원지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이 기도와 명상에 몰입했던 스페인 동북부 만레사 동굴경당은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이곳을 찾은 한 신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위 사진). 이냐시오 성인이 기사의 상징인 장검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몬트세라트 성당 내부.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이 기도와 명상에 몰입했던 스페인 동북부 만레사 동굴경당은 가톨릭 사제와 신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이곳을 찾은 한 신자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위 사진). 이냐시오 성인이 기사의 상징인 장검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몬트세라트 성당 내부. 천주교주교회의 제공
《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당시 자신을 낮추는 소통과 공감의 카리스마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가톨릭 역사상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그의 교황 명에는 ‘빈자(貧者)들의 성인’으로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의 삶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 하나, 22세에 입회해 평생을 지켜 온 예수회 영성은 그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다. 예수회 창설자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1491∼1556)의 생가 및 기념성당 등에 이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한 성녀 데레사(1515∼1582)의 삶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해 온 영성의 뿌리를 찾아간다. 》

스페인 북부 빌바오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로욜라.

이곳은 예수회의 출발점이자 심장이다. 예수회는 내적으로 이냐시오의 저서인 ‘영성수련’을 통해 가톨릭 내부의 쇄신을 주도하고, 대외적으로는 신대륙과 아시아 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서 가톨릭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서원뿐 아니라 교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까지 서약했다. 한마디로 예수회는 종교개혁으로 무너져 가는 가톨릭의 보루였다.

10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도착한 로욜라는 스위스 계곡의 소도시를 연상시켰다. 이냐시오 생가 및 기념성당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멀리 한쪽에는 병풍 같은 산들이 서 있다.

이냐시오 생가는 박물관으로 조성돼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이곳에는 한때 기사의 삶을 좇다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 그의 행적에 얽힌 그림과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4층 ‘회심(回心)’의 소성당은 한 젊은이가 하느님에게 삶을 바치는 결정적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인 1521년 스페인 귀족 가문 출신의 한 젊은이는 인근 팜플로나에서 프랑스군과 교전하다 다리 부상으로 귀환해 요양한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기사도의 활동을 그린 책으로 때우려고 했지만 마침 집에는 그런 종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집어든 그는 뜻밖에 이 과정에서 평소 일상에서 찾지 못한 기쁨과 평안을 찾는다. 심지어 아기 예수를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를 보는 환시(幻視)까지 체험한다.

이냐시오는 그 뒤 동북부 카탈루냐 주에 있는 몬트세라트(톱니 모양의 산)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제단에 기사의 상징인 장검과 단검을 봉헌한다. 검 대신 그가 손에 쥔 것은 순례자의 지팡이였다. 1522년 그는 이곳에서 15km 떨어진 만레사 동굴에서 구걸로 생계를 꾸려 가며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이냐시오 생가의 순례객 담당자인 아이노아 빌라 씨는 “이곳은 전 세계에 걸쳐 활동하는 예수회를 잉태한 모원(母院) 같은 곳”이라며 “가톨릭 성직자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지도자와 신자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한 해 10만 명에 달한다.

이곳에는 생가와 기념성당뿐 아니라 영성수련센터, 예수회 수도원도 들어서 있다. 수도원에는 평균 연령 82세인 신부와 수도사 5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교 시절인 1991년 이곳을 방문해 이냐시오 성인의 흔적을 더듬으며 기념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빌라 씨는 “2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을 당시 침묵 그 자체인 수도원마저 광란의 도가니가 됐다”며 “그 다음 날 세계 각국의 미디어가 로욜라에 몰렸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예수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예수회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교황과 예수회의 관계는 바늘과 실의 관계다. 아돌포 니콜라스 예수회 총장은 2주에 한 번씩 교황을 면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일 찾은 만레사에는 이냐시오가 수도한 동굴경당(소규모 그룹이 이용하는 순례자용 성당)이 있다. 그는 이곳에서 11개월간 생활하면서 많은 메모를 남겼고, 이는 현재 가톨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련서인 저서 ‘영성수련’이 됐다. 이 저서는 이냐시오가 겪은 신비 체험을 기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살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영성수련은 가톨릭 입장에서 볼 때 종교개혁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은 교회 개혁에 대한 예수회의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마르틴 루터가 교회를 떠나 개혁 운동을 전개한 반면 이냐시오는 내적 쇄신을 통한 영적 개혁을 선택한 것이다.

영적 개혁과 교황의 명에 따라 세계 어디든지 나가는 선교 서약은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정신을 보여 준다. 예수회원들은 적극적인 선교를 위해 사제복 착용이나 공동으로 바치는 성무일도(聖務日禱) 등을 의무화하지 않는 반면 현지 토착 문화는 상당 부분 수용했다.

예수회원들은 최종 서원 단계에서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애쓰지도 야망을 품지도 않는다’는 특별 서약까지 한다.

취재에 동행한 천주교주교회의 이정주 신부는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수련’은 현재까지도 가톨릭교회와 사제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 준 가난과 단순함, 파격의 행보는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예수회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로욜라·만레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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