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도 없이 병원 봉쇄 발표… ‘음압’ 없는데 치료병원 신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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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파장]삐걱대는 지자체 행정
“메르스 환자 받지 말라” 내부메일… 서울의료원 진료부장 보직해임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관련 기관들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특히 메르스가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기초적인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는 등 황당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계속되는 엇박자에 혼선 가중

부산시는 최근 부산대병원을 ‘확진환자 치료기관’으로 보건복지부에 보고했다. 확진환자를 치료하려면 반드시 격리된 음압병상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부산대병원에는 음압병상이 없다. 이 병원은 8월에야 음압병상 26개를 갖춘 호흡기전문센터를 가동할 예정이었다.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감염병 관리기관 확보 계획’이란 제목의 공문을 부산시에 보낸 것은 8일. 공문에는 ‘메르스 치료 병원의 경우 음압격리실을 보유한 대학병원’으로 적시됐지만 부산시는 엉뚱하게도 부산대병원을 적어 보고했다. 복지부 역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부산시 관계자는 “복지부 발표 후 즉각 전화를 걸어 음압격리병상을 갖춘 ‘동아대병원’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며 “메르스 환자 관리로 너무 바빠 착각했다.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명했다.

98번 환자가 입원했던 서울 양천구 메디힐병원 봉쇄 과정에서도 ‘소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메디힐병원 관계자는 1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오전 뉴스를 보고 봉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서울시와 구청, 보건소로부터 아무 연락이나 공문도 못 받았는데 병원 문부터 닫으라니 너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구장희 서울시 역학조사반장은 “(박원순) 시장님 발표 뒤 급히 양천구 보건소와 함께 봉쇄 논의를 시작했다”며 “상황이 심각한 만큼 (병원 측이) 이해하고 합의해 줄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혔다.

서울의료원 진료부장 서모 씨는 “메르스 환자를 받지 말라”는 내용의 e메일을 소속 의사 90여 명에게 보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10일 보직해임됐다. 11일 현재 이 병원에는 메르스 확진환자 11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의료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의견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전남도와 보성군은 메르스 자가격리 범위를 놓고 엇갈린 해석을 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전남도는 전남지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이미 7일 “마을 주민 등 밀접 접촉자 전체를 격리하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보성군은 이를 무시한 채 환자의 부인만 자가격리 조치했다. 보성군 관계자는 “확진 판정이 난 10일 전까진 의심환자여서 마을 전체를 폐쇄할 순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남 창원에서도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11일 오전 창원시는 격리인원 수를 549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경남도는 509명이 격리 중이라고 밝혔다. 경남도 관계자는 “창원시와 협의해 격리인원을 정리해야 하는데 통화가 잘 안 된다”며 책임을 돌렸고, 창원시는 “지침에 따라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 개인 신상정보 보안에는 둔감

공무원들이 메르스 의심환자나 자가격리 대상자의 신상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자칫 ‘낙인 효과’에 따른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민감한 정보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통해 유포한 것이다.

11일 충북 진천경찰서에 따르면 진천군청 공무원이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인 10일 오후부터 ‘진천군청 메르스 의심환자 발생 보고’라는 제목의 자료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진천군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된 이 문건에는 이 공무원의 인적사항과 증상발현일, 시간대별 행적, 접촉한 공무원, 격리 조치된 공무원의 이름 등이 실려 있다.

경찰은 이날 진천군을 찾아 이 문서가 유통된 부서와 관계기관 등을 조사했으며 해당 공무원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을 요구하거나 불법적인 문서 유출 등이 드러나면 정식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해당 공무원은 10일 오전 발열 등의 증상을 보여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메르스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경기 안양시와 화성시에서도 관계 공무원이 메르스 의심자 명단을 외부에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철호 irontiger@donga.com / 창원=강정훈 / 진천=장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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