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별별과학백과]바나나도 무서운 전염병 앓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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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살리기 대작전!

요즘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대부분 노랗고 끝이 뾰족한 ‘캐번디시’라는 품종이다. 그런데 1950년대까지는 지금과 맛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그로스 미셸’ 바나나를 먹었다. 그로스 미셸 바나나는 캐번디시보다 더 짧고 통통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로스 미셸 바나나를 먹을 수 없다. 바나나 전염병인 파나마병 때문이다.

키가 3∼10m 정도 되는 바나나는 사실 거대한 풀이다. 포토파크닷컴 제공
키가 3∼10m 정도 되는 바나나는 사실 거대한 풀이다. 포토파크닷컴 제공
○ 위기의 바나나

파나마병은 곰팡이균인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이 땅을 통해 퍼져 나가는 무서운 바나나 전염병이다. 곰팡이균이 바나나의 뿌리에 흡수되면 풀 전체로 이동하여 줄기 속 물관이 갈색으로, 잎이 누런색으로 바뀌고 결국 바나나가 죽고 만다. 파나마병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결국 1950년대 이후 바나나 농장에서는 그로스 미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로스 미셸 바나나가 농장에서 사라지고 나서 바나나 농장 주인들은 파나마병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캐번디시 바나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캐번디시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은 다시 바나나를 즐겨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쯤 지난 1994년, 캐번디시 바나나를 공격하는 변종 파나마병이 돌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기르는 바나나들은 전염병에 걸리기 쉽다. 줄기를 잘라 다시 심거나 꺾꽂이 방식으로 새로운 바나나를 계속 복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제된 농장의 바나나들은 야생 바나나에 비해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진다. 즉, 모두 똑같은 유전자만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질병이 돌았을 때 모두 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농장에서는 바나나를 많이 얻기 위해 촘촘하게 심기 때문에 전염병이 더 빨리 퍼진다.

바나나 연구자인 호주 퀸즐랜드공대의 제임스 데일 교수. 곰팡이균 저항 유전자를 넣은 캐번디시 바나나를 만들었다. 호주 퀸즐랜드공대 제공
바나나 연구자인 호주 퀸즐랜드공대의 제임스 데일 교수. 곰팡이균 저항 유전자를 넣은 캐번디시 바나나를 만들었다. 호주 퀸즐랜드공대 제공
○ 튼튼이 유전자로 바나나 살린다

2012년 프랑스 농업연구센터가 주도한 국제 공동 연구팀이 야생 바나나인 무사 아쿠미나타의 유전체를 모두 분석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야생 바나나에 파나마병을 이겨 낼 수 있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러면 그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집어넣어 새로운 종의 식용 바나나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뒤, 호주 퀸즐랜드공대 제임스 데일 교수는 실제로 바나나 유전자를 이용해 파나마병을 이겨 낼 수 있는지 연구했다. 야생 바나나에서 발견한 곰팡이균 저항 유전자를 캐번디시 바나나의 유전자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리고 파나마병을 일으키는 곰팡이균이 퍼져 있는 오염된 땅에 저항 유전자를 넣은 캐번디시를 길렀다. 그 결과 놀랍게도 유전자를 조작한 캐번디시는 오염된 땅에서도 18개월 동안 건강하게 자랐다.

이처럼 유전자를 이용해 바나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실제로 이 기술을 현장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유전자를 조작해서 만든 ‘유전자재조합 식품’이 세상에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바나나를 먹고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약골 유전자를 없애라


최근 국내 기업 ‘툴젠’에서 곰팡이균에 약한 약골 유전자를 정교하게 없애는 ‘바나나 세이브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유전자를 쉽게 자르고 이어 붙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할 계획이다. 유전자 가위란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 잘라 낼 수 있는 효소다. 이 효소에는 목표로 하는 유전자에만 달라붙는 특정 물질이 붙어 있다. 이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면 효소가 유전자를 잘라낸다.

이 기술은 유전자의 아주 작은 부분만 정교하게 없애기 때문에 야생에서 생기는 돌연변이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장점이 있다. 튼튼이 유전자를 집어넣는 방법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김석중 툴젠 연구소장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보통의 바나나와 거의 차이가 없도록 자연스럽게 약골 유전자를 없앨 수 있다면, 안전하면서도 튼튼한 바나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바나나 연구자들과 함께 어떤 약골 유전자를 없앨지 찾아 나갈 계획이다.

신수빈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sbshin@donga.com
#바나나#전염병#약골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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