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집 근처 가지말라며 수군수군”… 격리보다 힘든 이웃 불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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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2차 확산/격리자 급증]
자가 격리자가 말하는 고통

12일. 의사 A 씨가 집 안에 갇힌 기간이다.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단 한 발자국도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A 씨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다. 이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면서 그에게 자가 격리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2주간 집에만 있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A 씨의 기분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그는 병원에서 문제가 된 메르스 환자의 얼굴을 본 적조차 없었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의사가 전염병을 퍼뜨리고 다닐 순 없다’는 생각에 격리 조치에 순순히 응했다.

격리 첫날 잠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컴퓨터를 켜 인터넷을 검색하고 독서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바쁜 의사생활 때문에 포기했던 휴식시간이 모처럼 주어진 것 같았다. 다만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부모님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식사는 부모님이 방문 앞까지 가져다준다. 화장실도 개인용을 쓰고 있다.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날이 계속됐지만 2주일이라는 기간이 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고통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8일 A 씨는 기자에게 “격리 그 자체보다 더 힘든 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다”라고 털어놨다. 이따금 들려오는 바깥소식이 A 씨를 절망에 빠뜨렸다. 그는 “이미 아파트 주민 사이에 ‘○○○호에 사는 의사가 격리 중이다. 저 집 식구들도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이렇게 ‘주홍글씨’가 찍혔는데 격리가 풀려도 계속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A 씨를 더욱 답답하게 하는 것은 보건당국의 허술한 관리다. 그는 “격리된 지 2주가 다 되어 가지만 단 한 번도 구청이나 보건소, 서울시청의 연락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같은 처지의 동료(의사)들 중에도 공공기관이 증상을 체크했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1명이 자가 격리 대상자에게 ‘하루 2회 전화, 주 1회 이상 방문’하고 모니터링을 하겠다는 서울시의 ‘1인 1담당제’는 현장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A 씨처럼 2주일간 자가 격리 조치를 받은 사람은 지금까지 3000명에 육박한다. 그나마 A 씨처럼 돌봐줄 가족이 있거나 생계에 큰 어려움이 없으면 다행. 홀로 사는 노인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은 당장 먹고사는 것이 문제다. 부산 사하구의 B 씨(70)는 7일 오후 2시경부터 자가 격리됐다. 그는 부산에서 발생한 첫 메르스 확진환자를 병원으로 태워다 준 택시 운전사다. B 씨는 현재 사하구청 직원 등으로부터 24시간 밀착 관리를 받고 있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구청에 영업비 보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호 irontiger@donga.com / 부산=조용휘 기자
#격리#자가 격리자#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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