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급한데도 병원 안가고… 수술 받자마자 “퇴원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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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비상/불안한 국민들]일반환자 ‘병원 기피증’ 우려

“저 무조건 퇴원할래요.”

지난달 31일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당뇨망막증과 망막박리 수술을 받은 김은선 씨(51)는 주치의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최소 사흘 정도 안과병동에 입원해 경과 관찰이 필요한데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 때문에 병원에 머무는 것을 극도로 꺼린 것이다. 주치의는 “우리 병원은 메르스 의심환자도 없고, 더구나 안과 병동에는 그런 환자가 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 퇴원할 경우 염증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처럼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면서 병원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극에 다다르고 있다. 반드시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까지 외래 진료를 취소하는가 하면, 입원 기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환자들도 나오고 있다. 특히 메르스 확진환자가 다녀간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괴담처럼 퍼진 병원들은 “외래 진료실이 텅텅 비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 대학병원-검진센터 발길 뚝

본보가 서울 경기 지역의 500병상 이상 대학병원 10곳을 조사한 결과 외래환자가 적게는 5%에서 많게는 30%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A대학병원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게 메르스 확진환자가 거쳐 갔다고 소문이 나서 외래환자가 30%가량 줄었다. 특히 하루 200명 이상 방문하던 건강검진센터는 단체 회사 검진이 취소되면서 환자가 75%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중증환자보다는 경증환자가 많이 방문하는 동네 병원, 의원들의 피해는 더 크다. ‘급한 치료가 아니면 최대한 미루자’는 인식이 늘면서다. 메르스와 연관성이 적은 정형외과, 해외 환자를 주로 유치하는 성형외과 등도 신규 환자가 5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메르스 의심 신고한 병원, 결국 휴업하기도


메르스와 연관된 병원들의 피해는 더 큰 실정이다. 부산의 B내과의원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방문한 뒤 사실상 영업을 접었다. 보건당국에 메르스 의심환자 신고를 했는데,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역학조사관들이 병원에 들어서는 사진이 SNS를 통해 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래환자가 75% 가까이 줄어들었다. 해당 환자는 메르스 유전자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B의원 원장은 “보건당국에 정직하게 신고를 한 병원들이 더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실명을 거론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메르스 의심환자를 보겠느냐”면서 “인건비, 임대료 등을 버티지 못해 휴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에 있는 400병상 규모의 중급 C종합병원도 보건소에 메르스 의심환자를 신고한 문건이 노출되면서 외래환자가 30% 넘게 줄었다. C병원장도 “보건당국이 보안 유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신고를 하고 싶겠는가, 차라리 신고하지 않고 벌금 200만 원을 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 메르스 치료 병원이 더 안전

전문가들은 막연한 공포로 병원 치료를 연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입을 모은다. 치료를 연기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메르스 감염 위험보다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스 확진환자 또는 의심환자가 치료받고 있는 국가 지정 격리병원과 일부 민간병원은 국내 정상급 감염 관리가 진행 중이다. 오히려 일반 병원보다 메르스 환자가 있는 병원이 안전하다는 얘기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메르스 환자가 있는 병원은 그만큼 감염병 관리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병원이다”라며 “근거 없는 공포감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제대로 조치를 못 받는 것은 환자 개인은 물론이고 전 국가적 손실이다”라고 말했다.

설사 메르스 확진환자 또는 의심환자가 거쳐 간 병원이라도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일단 확진환자들은 일반환자와 만날 수 없는 공간에 격리돼 있다.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은 방호복과 방호장비를 착용하고 환자와 만나고, 이 장비들은 일회용으로 폐기한다. 격리 병상을 나올 때는 전신 소독을 한다. 메르스를 전파할 정도의 확진환자의 비말이 병원 곳곳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환자들을 만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들은 병원 외부에 의심환자들을 위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손준성 강동경희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반환자와 메르스 의심환자가 접촉하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특히 자신이 메르스가 의심된다면 더더욱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 65세 이상 노인, 면역력이 약한 만성질환자, 영유아의 경우는 병원을 방문할 때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자신이 진료를 받아야 하는 구역 외에 응급실 또는 중환자실 주변은 피해야 한다. 중증질환이 아니라면 의심환자가 방문할 가능성이 적은 동네 의원을 가는 것이 좋다.

○ 감염병 치료 의료인에 대한 격려 필요


병문안을 위한 면회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급적 50대 이상의 동반자와 함께 환자 병문안을 가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환자와 가족이 병실에서 함께 지내는 병간호 관행도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감염 위험을 감수하고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에 대한 격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는 “지금 악조건에서 감염 위험이 있음에도 희생적으로 메르스 확진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 있는데 병원이 공개돼 고통받고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에볼라와 같은 치사율 높은 감염병을 치료하는 의료진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데, 우리는 반대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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