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거짓말 탐지기, 거짓말 안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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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기소사건 89%, 법원 최종 유죄판결과 91% 결과 일치
2009~2012년 탐지검사 사건중 대검, 확정판결 6273건 분석

“성폭행당하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A 씨(41·여)는 승용차 조수석에서 뛰쳐나와 지나가던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졌고 블라우스 단추도 뜯겨져 있었다. 차 안에는 건장한 남성 B 씨(49)가 있었다. A 씨는 빌린 돈을 받으려고 만난 B 씨가 돌연 성폭행을 하려 했다며 경찰에게 정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A 씨 진술로 B 씨는 경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B 씨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거짓말탐지검사(심리생리검사)를 했다. 진실 반응이 나왔다. 이 결과를 들은 A 씨가 당황하는 걸 본 검찰이 추궁하자 반전이 일어났다. B 씨가 돈을 갚지 않는 게 괘씸해 거짓말을 했고, 머리와 블라우스 단추도 스스로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B 씨는 바로 석방됐고, A 씨는 무고죄로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거짓말탐지검사가 없었다면 B 씨는 꼼짝없이 성폭행 미수범으로 몰릴 뻔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부장 김오수 검사장)가 2009∼2012년 거짓말탐지검사를 한 사건 중 확정 판결이 난 6273건(8609명) 전부를 1년 동안 심층 분석해 보니 검찰이 기소한 사건과 검사 결과가 89.2% 일치한 것으로 2일 밝혀졌다. 법원이 최종 유죄 판결한 사건과는 91%가 일치했다. 수사에 쓰인 거짓말탐지검사 결과와 실제 검찰·법원의 사건 처분을 최초로 정밀 분석한 자료라 앞으로 학계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거짓말탐지검사를 한 사건은 살인·강도, 강간·추행, 방화, 마약 등 강력범죄가 47.5%로 가장 많았다. 강력범죄는 행위가 실제 있었는지가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에 따라 판가름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기·사문서위조 등 재산 관련 범죄도 20.9%를 차지했다. 신성식 대검 과학수사1과장은 “거짓말탐지검사는 범죄 행위의 실체를 규명할 유일한 증거인 당사자 진술이 서로 엇갈렸을 때 진위를 가려주는 돌파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검사 기술이 발전해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과거와 달리 검사 결과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대검이 2009∼2012년 검사를 전수조사해 보니 23건이 재판에서 증거로 인용됐다.

한 50대 남성이 말을 잘 못하는 정신지체장애인 모녀를 연이어 강간한 뒤 일관되게 부인하다가 호흡 혈압 피부전기저항에서 모두 거짓 반응이 나와 검찰이 이를 주요 증거로 기소해 징역 7년형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성범죄나 무고 등 진술 하나로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 있는 사건에서는 이 검사 결과가 법정 증거로 쓰이기도 한다.

검사 결과가 검찰이 기소한 사건과는 90% 가까이 일치하는 반면 무혐의 처분한 사건과는 61.2%로 상대적으로 낮게 일치한다. 인체 생리 변화를 기반으로 한 검사라 잘못 판정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선 검찰청에서는 다른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검사 결과만을 증거로 기소하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다.

대검은 23개 일선 검찰청에서 실시한 검사 결과를 공유해 대검 심리분석관 7명과 교차 검증하며 검사 신뢰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있다. 뇌파분석, 안면온도, 동공크기 분석 등 선진기법을 수사 현장에 적용시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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