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혁신校… 진영논리에 교육현장 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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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대거 등장 1년 평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고 1년이 흘렀다. 당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대구, 경북, 울산을 제외한 14곳에서 진보교육감이 등장하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9시 등교, 혁신학교 확대 등 진보적인 정책들이 빠르게 추진됐다. 진보교육감 지역의 교사와 학부모, 교육 전문가들은 진보교육감들의 지난 1년에 대해 대체적으로 “과거 직선제 교육감들처럼 직전 교육감의 정책들을 모조리 뒤집는 경향은 줄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서 진영 논리와 이상을 중시하다 부작용을 키웠다는 불만도 나왔다.

○ 9시 등교 등 진영논리 정책은 혼선

진보교육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혁신학교 확대와 자율형사립고 폐지였다.

진보교육감들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공동 공약을 통해 2009년 경기도를 중심으로 도입된 혁신학교를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혁신학교를 운영하던 서울 경기 강원 전북 전남에 이어 부산 세종 인천 충북 충남 경남 제주에서도 혁신학교를 늘려가고 있다. 이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혁신학교에 예산이 집중적으로 지원되다 보니 일반학교에서 박탈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서울지역 한 혁신고 교장은 “혁신학교 교사들은 ‘교육감은 우리 편’이라는 의식이 강해서 9시 등교 등 교육감의 정책에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주려 한다”면서 “학교 현장은 지금 혁신학교와 비(非)혁신학교로 편 가르기를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소외감을 호소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서울지역 한 자율형공립고 교장은 “자율형공립고는 지난 정부에서 교육부가 만든 혁신학교인 셈이라 이제는 교육부도, 진보교육감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며 “예산 지원도 갈수록 줄어 교육프로그램을 하나씩 줄여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보교육감들이 내놓은 일반고 지원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지역의 한 일반고 교사는 “진보교육감들은 대학 입시 자체를 근절해야 할 ‘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리 돈을 투자해도 일반고를 살릴 수 없다”면서 “교육청이 내놓은 일반고 살리기 대책 가운데 체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 현장 파악과 여론 경청 요구 높아

현실을 외면한 이상적인 정책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이 힘들어진다는 불만도 있다. 특히 9시 등교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한 맞벌이 학부모는 “돌봄교실 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9시 등교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예전처럼 일찍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다”며 “오전 8시 40분 이전에는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맞벌이 가정 아이들끼리 벤치에서 비를 맞고 기다린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책이 의도했던 수면시간 확보 같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오히려 방과 후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새벽반 학원까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감들이 현장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의 유치원 지원 횟수 제한 소동에서 극대화됐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감 취임 이전부터 실무진에서 준비해오던 정책을 새 교육감이 잘 숙지하지 못하고 시행해서 벌어진 사달”이라며 “돌이켜보면 검토와 여론수렴의 과정이 필요한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교육감이 현실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은택 nabi@donga.com·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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