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지적 기만 없이 간명한 직관이 좋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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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대니얼 데닛 지음·노승영 옮김/592쪽·2만2000원·동아시아

생명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의 ‘DNA 이중나선 구조’ 논문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는 게 하나 있다. DNA 열풍을 불러왔고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이 기념비적 논문의 ‘간명함’ 때문이다. 너무도 간단명료해서 아름다운 논문이라는 칭송까지 받는다.

1953년 4월 25일 자 네이처지에 실린 이 논문의 분량은 A4용지 한 장에 불과하다. 복잡한 수식 하나 없이 이중나선 구조를 보여주는 간단한 삽화와 깔끔하게 정리된 글이 전부다. 심오한 지식은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단순한 것이라는 진리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사고의 틀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아마도 크릭과 왓슨의 간명함을 절대 신봉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는 책 곳곳에서 전문가들의 지적 기만을 질타하고 직관적이면서도 단순한 지식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자신의 수업시간에도 명망 있는 학자를 초빙한 뒤 대학원생이나 동료 학자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오로지 학부생들과 끝장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그는 서문에서 “나는 똑똑한 학부생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면 실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을 이처럼 간명하게 해내려면 어떤 생각의 도구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때 ‘당연하다’는 표현이 사용된 부분을 먼저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귀류법(歸謬法)의 접근방식과 유사한데, 당연히 전제하는 부분 안에 중요한 논리적 허점이 숨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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