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대원 진료, 외상이 가장 많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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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 19년 의료기록 첫 공개

2012년 6월 20일 남극 세종기지 전경. 오전 11시에도 해가 뜨지 않아 어둡다. 남극에서는 4∼9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수면리듬 등 신체리듬이 깨지기 쉽다. 극지연구소 제
2012년 6월 20일 남극 세종기지 전경. 오전 11시에도 해가 뜨지 않아 어둡다. 남극에서는 4∼9월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수면리듬 등 신체리듬이 깨지기 쉽다. 극지연구소 제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가 4개월이나 지속되는 이곳.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땅 남극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건강은 괜찮을까.

1988년 세종기지가 남극에 들어선 뒤 26년간 기지 대원들의 의료기록을 조사한 보고서를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기지에 근무하는 대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질환은 외상이었다. 감기 등 외부 바이러스의 침입에 의한 질병보다는 사고로 인한 부상이 대원들의 건강을 가장 위협했다.

남극으로 가는 쇄빙선 아라온호의 선의(船醫)를 지냈으며, 세종기지에서 연구를 진행한 이민구 고려대 의대 교수는 “26년간 의료기록 중 온전히 보존된 19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세종기지 대원들은 외상을 가장 많이 입었다”면서 “남극 기지에는 외과 전문의를 배치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2011년 남극 세종기지에 근무 중인 24차 월동대원들이 헬기를 통해 중간 보급을 받고 있다. 남극 대원들은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극한 탐사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만큼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 극지연구소 제공
2011년 남극 세종기지에 근무 중인 24차 월동대원들이 헬기를 통해 중간 보급을 받고 있다. 남극 대원들은 고립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극한 탐사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만큼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 극지연구소 제공
○ 26년간 급환으로 12건 후송

피부가 찢어지거나 골절을 입는 외상 환자는 24%를 차지했다. 26년간 급환으로 환자를 후송한 사례가 12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10건이 외상이었다. 반면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이지만 동상 환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전체 환자의 0.25% 수준에 머물러 대원들의 극한 대비는 철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화기 질환(19%)이 두 번째로 랭크됐다. 피부 질환(15%), 근육통과 염좌 등 근골격계 질환(14%)이 그 뒤를 이었다.

세종기지 대원들의 평균 건강 상태는 일반인보다 더 양호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연간 병원을 찾는 횟수는 20대 후반 10회에서 50대에는 20회로 2배 가까이 늘어난다.

하지만 세종기지 대원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평균 9회 정도 의사를 찾았다. 이 교수는 “기지에서는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생활할 뿐 아니라 탐사 등을 위해 신체활동이 왕성한 편”이라면서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에 있을 때보다 건강이 더 잘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기지 27차 월동대장을 지낸 허승도 극지연구소 극지기후변화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남극에는 병원균이 거의 없고 주위 환경이 깨끗해 감기 같은 일반적인 질병에는 오히려 잘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정신건강의학, 환경과학 연구가 대세

이 교수의 이번 조사는 대한극지의학회 연구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대한극지의학회는 남극 월동 대원으로 참여한 의사들이 결성한 극지의사회와 극지연구소, 고려대가 주축인 극지의학연구회 등 3개 단체가 모여 지난해 출범했으며 11일 첫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홍종원 극지의학회 학술이사(연세대 의대 교수)는 “극지의학이라고 하면 동상이나 저체온증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런 분야는 1970년대 이전에 이미 연구가 끝났다”면서 “최근에는 고립된 기지 환경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적인 연구나 세균, 바이러스 등 기초 병리학 연구, 환경과학 연구 등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진원 고려대 의대 교수팀은 지난해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에서 신종 아데노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극지연구소 공중보건의로 세종기지에 근무한 조경훈 고려대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월동대원들의 스트레스지수가 수면 주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태양빛과 파장이 비슷한 인공조명을 기지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한겸 대한극지의학회 회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극지 연구는 고립된 환경이 연구 대상인 만큼 우주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남·북극 기지의 원격진료를 지원하고 각종 과학기술 연구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남극대원#외상#세종기지#의료기록#극지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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