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보는 엄마… 희생하는 사람에서 위로받아야 할 존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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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5주년][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1>엄마는 고달프다
5년간 빅데이터 분석

요즘 식욕이 없다.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느라 몸은 바쁜데 정작 마음은 허전하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 든든하고, 아들을 볼 때면 행복하지만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최경아(가명·39) 씨 얘기다. 그는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의 10년은 ‘엄마의 인생’으론 장밋빛, ‘내 인생’으론 회색빛이었다”며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 싶다”고 했다.

‘엄마 8년차’ 이유선(가명·41) 씨도 마찬가지. 매일 집에선 남편,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밖에선 아이 교육을 놓고 다른 엄마들과 무한 경쟁 중이다.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내 이름은 잃었다.”

이름을 찾고 싶은 엄마들의 바람이 통했을까. 엄마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도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에서 ‘나만의 세계가 필요한 사람’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가족들 “엄마는 엄마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인 ‘82쿡’과 달리 국내 최대 커뮤니티 ‘DC인사이드’는 주로 젊은 사람들과 남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이곳에 게시된 글에서는 엄마의 속내가 아닌 엄마에 대한 가족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2010년 1월∼2015년 3월 ‘DC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 엄마를 독립된 개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감지됐다. 분석 대상 시기 초반에는 엄마와 연계된 단어로 아빠, 결혼, 공부 등이 많이 검색됐지만 지난해부터는 인생이나 시간과 같은 키워드가 언급 빈도 순위 상위권에 들기 시작했다.

의미망 분석에서도 엄마에 대한 인식 변화가 드러났다. 2013년 이전에는 엄마 관련 주요 키워드들을 붙여 해석하면 엄마는 △나이 든 여자 △대학 진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는 사람 △결혼할 때 아파트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미안함을 자아내는 사람 △자존심과 책임을 가진 사람 △결혼에 대해 후회, 고민을 하는 사람 등의 해석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최근 문화계에서 나타나는 흐름과도 일치한다. 서점에선 ‘엄마의 꿈’ ‘엄마의 자기 혁명’ ‘외롭고 지친 엄마를 위한 심리학 카페’ ‘아줌마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처럼 가족 관계를 떠나 엄마를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책들이 부쩍 늘었다.

엄마들의 인문학 공부 열기도 분석 결과와 맥이 통한다. ‘엄마 인문학’의 저자인 인문학자 김경집 씨는 “예전엔 엄마들이 자존감의 원천을 남편 승진과 자녀 진학 등에 뒀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인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인문서적을 읽는 등 엄마들의 ‘소셜 힐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승진해도,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미래가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에게 집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 엄마는 여자다


엄마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변화도 나타났다. 2013년 이전의 텍스트에서 엄마의 성(여자)과 상관관계가 높은 주요 키워드는 나이, 결혼, 남편, 아빠 등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이에 더해 사랑, 연애, 친구 같은 단어가 추가됐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편의 배우자’에서 ‘한 개인이자 이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13년 이전에는 엄마의 성과 관계된 키워드로 의미망을 분석한 결과 △엄마는 나이 든 사람으로 결혼할 때 집안이 가난했고 △나이 들면서 얼굴, 피부, 몸매에 민감해졌으며 △엄마는 고생하다가 동네 아줌마처럼 늙어 수술해야 하는 존재였다.

반면 지난해부터는 △몸매나 얼굴을 가꾸는 등 엄마의 관리도 중요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자는 사랑받아야 한다 등의 문장이 도출됐다.

이종대 아르스 프락시아 이사는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들의 자아가 강해지고 여성스러운 삶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주변에서도 엄마의 여성스러운 부분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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