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물바다 강남역’ 배수시설 뜯어고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반포천보다 지대 낮아 빗물 역류… 서초동 삼성사옥 하수관도 잘못돼
2016년 6월까지 90억 들여 고치기로

2011년 7월 27일 상황을 설명하는 주부 하수연 (가명·31)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울 강남역 근처 우성아파트(서초동)에 사는 하 씨는 당시 생후 50일 된 딸을 안고 친정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장맛비가 내렸지만 하 씨는 “이미 지난해(2010년) 홍수가 났는데, 설마 또 그럴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 씨는 택시를 잡기 위해 집을 나와 큰 길로 걸어갔다. 불과 10분 남짓한 틈에 아파트 단지 전체로 흙탕물이 밀어닥쳤다. 하 씨는 간신히 아파트 상가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정전까지 나면서 딸과 함께 한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홍수를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인 강남역 일대는 여름철 집중호우 때면 물바다로 변한다. 특히 2010년과 2011년 대형 침수 피해가 발생해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주변 업무용 빌딩가 아파트까지 큰 피해를 봤다. 서울시 조사 결과 강남역 일대 홍수는 지형적 특성과 잘못 설치된 하수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나타났다.

17일 시에 따르면 강남역 일대는 주변 지역에 비해 고도가 17m 정도 낮은 ‘항아리형’ 저지대다. 주변에 내린 비가 몰려들어 고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수관 설치도 애초에 잘못됐다. 강남역 근처에 내린 빗물은 대부분 반포천으로 흘러든다. 문제는 고도가 반포천 수위(만수 시 16.94m)보다 낮은 탓에 펌프장을 거쳐야만 제대로 방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하수관로 설계가 잘못돼 서초동 역삼동 일부 지역(약 13ha)의 빗물이 펌프장으로 흐르지 않고 그대로 버려진 것이다. 이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하수관로에 고인 빗물이 반포천의 높은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맨홀을 통해 넘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서초동)의 하수관로 시공 오류도 확인됐다. 강남역과 삼성사옥을 직접 연결하는 지하보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하수관 하류가 상류보다 오히려 1.8m 높은 ‘역(逆)경사’로 시공돼 물 흐름이 차단됐다.

시는 올해 우기 전까지 5억 원을 투입해 삼성사옥의 역경사 하수관의 흐름을 바로잡고 근처 저수조에 빗물 유입관로를 추가로 설치하기로 했다. 또 내년 6월까지 공사비 85억 원을 들여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모두 개선하기로 했다. 2019년까지 고지대인 예술의전당 일대(서초1·2동)의 빗물을 곧장 반포천 중류로 보내는 ‘유역분리터널’(348억 원 소요) 설치도 추진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번 대책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빗물을 반포천이나 한강으로 그대로 흘려보내는 대신 강남역 주변 지하에 소규모 빗물 저장조를 많이 만들어 물이 부족할 때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