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내가 살 집은 어디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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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생존과 직결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했다. 집 구하기다. 천사 같은 집주인을 만나 월세나 보증금 인상을 막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현실에선 2년이 지나면 당연하다는 듯 새집을 구해야 한다. 모든 세입자의 인생이 2년마다 갱신된다고 보면 된다. 왕십리에서 2년, 수색에서 2년, 홍익대 앞에서 2년, 그리고 어디인지 모를 나의 새집이 있는 동네에서 2년. ‘수동적 떠돌이 인생’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집을 구하기 위해 우선 인터넷 사이트부터 살폈다. 이사 가고 싶은 동네 복덕방을 찾아 상담을 받고 집을 구경 다니는 일은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명 포털 사이트의 방 구하기 카페에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게시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여기에는 ‘전세자금대출 가능’ 같은 실질적인 조건 이외에도 여러 미사여구가 따라붙는다. ‘1층 같은 반지하’ ‘주인집이 가까워서 좋아요’ ‘주인집이 멀어서 좋아요’ 등. 뭇 광고 문구 못지않다.

모니터를 통해 사진을 구경하다 보면 방을 구하는 일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건 조금 씁쓸한 기분이다. 부득이 낯모르는 자의 생활 흔적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나와 비슷한 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무작위 이미지로 제시된다. 마땅히 갈 곳 없어 거실 한가운데 위치한 냉장고랄지, 도저히 편한 자세로 볼일을 볼 수 없는 화장실이랄지, 그다지 자랑스러울 리 없는 일상을 공개해야 하는 절박한 스펙터클. 그 처연한 정서는 사이트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게시물 켜켜이 세입자들의 피로가 잔뜩 쌓여 있는 광경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흥미로운 작품을 보았다.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전시의 ‘확률가족’이란 프로젝트다. 이 작품의 감상법은 독특하다. 스무 개의 문이 닫혀 있고 그 앞에 숫자가 적힌 스무 개의 발판이 있다. 82만5000원부터 700만 원까지. 월 소득을 의미하는 숫자다. 제 처지에 해당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숫자가 적힌 동그란 발판 그래프가 열을 맞춘 바닥에 빼곡히 설치돼 있다. 월 소득 210만 원 앞에 서 보았다. ‘―23281(천 원)’이라는 숫자와 맞닥뜨렸다. 이 숫자는 210만 원 월 소득으로 대출을 받아 전세를 구하고 30년이 지났을 때의 주머니 사정을 의미한다. 제 월 수익에 맞춰 정해진 좌표 위에 서면 자신이 살게 될 집은 물론이고 그 집을 선택한 결과로 30년 후의 주머니 사정까지 산출해주는 무시무시한 작품.

부동산 조사 연구자와 그래픽 디자이너의 합작품인 이 거대한 그래프에서 관람객은 전시 관람자인 동시에 좌표가 된다. 그래프의 가로축은 에코 세대(1979∼1992년생) 자녀가 현재 급여로 받을 수 있는 최대 대출액, 세로축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대 증여액이다. 이 두 지표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30년 후 에코 세대의 통장 잔액이다. 또한 발판 위의 액수에 맞춰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제시된다. 은평구 수색동의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인 다가구주택부터 서초구 반포동의 전세 10억 원짜리 브랜드 아파트까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세입자의 표본이 이 전시에서 제시된다.

전시장 안의 발판은 절반이 흰색이다. 흰색은 적자를 의미한다. 월급이 많으면 흑자 인생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월급보다 더 중요하게 에코 세대의 삶을 좌우하는 건 부모의 증여액이다.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모두 같은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를 증여받느냐에 따라 다세대주택이냐 아파트냐가 결정되고, 강북이냐 강남이냐가 정해진다. 20대 중반에서 30대 후반을 아우르는 에코 세대의 삶은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숫자로 현현한 세입자의 운명 앞에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에코 세대의 삶은 정상적인가? 벌이를 차곡차곡 저축하며 악착같이 산다고 해도,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적자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운명이 과연 정상적인가? 서른 넘은 나이에 결혼도 안 한 채 아파트로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으로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살 집을 알아보는 피로감의 근원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청춘의 말년에 곱씹어 본다. 내가 살 집은 어디인가.

함영준 매거진 ‘도미노’ 동인
#내가 살 집#확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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